[사설]'고이즈미 정권' 기대와 우려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0분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후생상이 자민당 의원총회에서 새 총재로 당선되어 곧 총리지명선거를 거쳐 일본을 이끌게 된다. ‘개혁과 파격’의 이미지로 권력을 잡은 고이즈미 총재는 최근 10여년간 ‘침체와 퇴행’을 거듭하는 듯한 일본을 일신할 수 있는 인물로 뽑힌 것이다.

이번 선거는 자민당 총재가 합종연횡으로 뽑힌다는 과거의 통념을 깬 케이스다. 고이즈미의 당선은 자민당의 개혁과 경기부양을 호소한 목소리가 크게 먹혀든 결과로 보인다. 모리 총리의 퇴진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으로 인한 정치공백,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경제터널’ 같은 것이 고이즈미 정권을 부른 셈이다.

당장은 그가 조각(組閣)에서, 공약해온 대로 고질적인 파벌 안배, 선수(選數) 중시 인사관행을 깨뜨리고 ‘드림팀’을 구성해낼지 관심거리다. 당내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당 3역과 각료 인선에서 파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식이라면 지지자들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혁과 더불어 ‘안정되고 강력한 정부’를 바라는 일본인의 꿈과는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한국의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그의 개혁 성향, ‘열린 정치인’ 이미지가 빗나간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인식과 망언을 차단해 한일 우호관계에 이바지 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최근 자민당 총재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표를 얻기 위한 그의 언동은 한일 관계의 장래를 심각하게 우려하게 한다.

그는 안보 헌법 이념 등의 분야에서 선명한 보수 색채를 드러내며 보수 경쟁을 주도한 측면이 있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 ‘21세기에 적합한 헌법 개정을 조기에 실현한다’고 공약했다. 나아가 전범(戰犯) 위패도 놓여진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자격으로 참배하겠다’고 공언하곤 했다. 최근 한일간의 외교문제로 번진 왜곡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해서도 그는 ‘한국의 간섭이 부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이 그대로 실천된다면 한일, 한중관계 등 동북아에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해야 할 사명의 ‘고이즈미 정권’이 열린 세계관, 근린(近隣) 중시를 벗어나 자칫 자폐적이고 국수(國粹)주의로 흐르고 이웃 부정(否定)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의 불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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