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애널리스트 정보독점은 위법"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30분


“죽었다 깨어나도 개인이 기관을 이길 순 없다. 개인들은 증권가 정보흐름에서 늘 후순위로 처져있기 때문이다.”(한 증권사 투자정보팀장)

개인들이 직접 상장기업들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투자자들의 정보원 노릇을 해줘야 하는 애널리스트들은 개인을 차별대우한다. 이 때문에 개인들은 보통 기관들에 비해 1∼3일가량 늦게 기업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개인이 손을 대면 기관은 손을 터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런 증권가 관행이 위기에 몰렸다.

관계당국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 사실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도 이미 나와 있다. 감독당국이 엄격한 법 집행 의지만 갖고 있다면 개인들이 늘 ‘기관들의 설거지를 대신해주고 상투만 잡게되는’ 상황이 다소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16일 “상장법인들이 영업실적, 유상증자 등 중요한 투자정보를 공식발표 이전에 특정 애널리스트나 증권사 영업직원들에게 흘리는 것은 명확히 증권거래법상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 금지조항의 규제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공개 정보를 제공한 기업체 담당자와 그 정보를 자기 고객에게 전해준 애널리스트는 당연히 문제삼을 수 있다”면서 “다만 그 정보를 주식 매매에 활용해 돈을 번 사람들까지 처벌하는 미국식의 엄격한 법 적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의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작년 10월 23일부터 기업들이 특정 이해당사자들에게 남보다 앞서 정보를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업이 투자정보를 제공하려면 공시 등을 통해 공식발표해 모든 사람이 동시에 알려야 한다는 취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공개하는 것도 허용된다.

핵심은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동시에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

▼미국의 공정 정보공개규정(Regulation FD)▼

조문내용 해설
“주식발행자나 그 대리인이”경영진, PR 및 IR 부서 담당자 또는 이들의 지시를 따르는 다른 부서의 직원들.
“특정인이나 특정인들에게”변호사 회계사 등 사업상 관계인들, 신용평가사, 전국을 커버하는 언론 등은 제외.
“중요한 비공개 정보를 알리거나 누설했을 때는”

기업실적, 인수 및 합병, 전략적 제휴, 자산 매각 및 매입, 신제품 개발, 경영진 변화, 회계의견 변화, 자사주매입 액면분할 등 주식 관련 정보 등.
“의도적으로 공개했을 때는 동시에, 의도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즉각 다른 불특정다수에게도 공개해야 한다.”누설자 또는 공개자의 상급자가 이 사실을 안 뒤 24시간 이내에 최대한 빨리.

(자료:www.sec.gov)

금융감독원 유흥수 공시감독국장은 “기업들이 개인들보다 먼저 기관에 정보를 주는 문제는 법률적 보완이 필요없고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면서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단속할 여력은 없으나 문제가 불거지면 강력히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유국장은 “확정된 기업관련 사항은 완전하고 신속하게 공시해야 하며 진행중인 사안은 관련 이해당사자에게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관계당국의 가장 큰 고민은 정보 불균등의 관행이 이미 고질화돼 있다는 점. 이와 관련, 이미 지난 95년에 판례가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떠들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상화돼 있다 보니 이같은 불공정한 관행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엄격한 법 집행이 활발한 정보유통을 막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 증권감독국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인 공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애널리스트의 기업정보 중계 역할을 막아버리면 투자자들이 정보공백지대에 놓여 ‘묻지마 투자’가 더 많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의 고민과 우려는 SEC가 ‘공정한 정보공개 규정(Regulation FD)’를 마련하려 할 때 부딪쳤던 것과 똑같다. 하지만 SEC는 수개월간의 입법예고 기간에 6000여건의 의견을 듣고서는 사실상 원안 그대로 이 규정을 통과시켰다.

한 애널리스트는 “당사자 입장에서 봐도 이것은 ‘미국과 우리는 처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막연히 미룰 문제가 아니다”면서 “관련 규정이 마련되면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처럼 단순히 정보를 중계해주는 데서 벗어나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미래의 기업가치를 분석하는 본연의 역할에 매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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