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풍' 누가 과대포장했나

  • 입력 2001년 4월 11일 18시 37분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중국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이른바 ‘총풍(銃風)사건’의 실체에 대해 1, 2심 재판부가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오정은(吳靜恩) 한성기(韓成基) 장석중(張錫重)씨 등 3명의 피고인이 사전모의를 거쳐 계획적으로 범행에 옮겼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으나 2심 재판부는 엊그제 선고공판에서 ‘무력시위 요청은 개인의 돌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한마디로 사전모의의 실체를 인정하기 어려운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물론 2심 재판부도 오씨 등이 당시 여당 후보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북측 인사와 접촉한 사실은 인정하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조직적 계획적 범행이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배척했다는 것은 이 사건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98년 수사 당시 검찰과 안기부는 이 사건은 국기(國基)를 뒤흔든 사건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회창 총재 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연계 여부에 대해 계속 수사하겠다”는 말로 정치적 배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검찰의 보강수사 결과는 발표된 적이 없고 1심 재판부도 지난해 12월 선고공판에서 “정치권 연계 여부는 수사기록상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정치적 배후는 물론 피고인 3명의 사전모의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2심 재판부의 판단대로라면 검찰과 안기부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우발적인 단순 사건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과대 포장했다는 얘기가 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 제기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의 수사구도에 대한 2심 재판부의 ‘의심’은 판결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특히 사전모의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인 자백의 신빙성은 물론 임의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씨와 장씨가 자백에 이르게 된 경위에 비추어 모의하였다는 자백은 믿기 어렵다’고 판결문에 명시했을 정도다.

우리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지 못한다. 검찰도 “2심 재판부가 사건의 실체를 오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의 엇갈린 판결로 미루어 검찰과 안기부의 수사에 문제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심은 떨칠 수 없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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