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한국은 기초과학 후진국"

  • 입력 2001년 3월 30일 18시 52분


바이오기술, 생물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물리학, 반도체 및 고체재료 등 6개 첨단 과학분야에서 분야별로 세계 15위권에 드는 한국인 학자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물리학, 생물학 등 18개 기초과학 분야에서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이 세계 평균에 미치는 분야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의 질(質)을 분야별로 종합평가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30일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특히 분자생물학, 지구과학, 생물학 및 생화학, 약리학, 면역학, 생태학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바이오분야의 학문수준이 현저히 낮다는 뜻이다.

이 조사결과는 최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94년부터 99년까지 발표된 전세계 기초과학 논문의 질(피인용횟수)을 토대로 분석한 것이다. 미국은 18개 기초과학분야에서 모두 높은 수준으로 평균이상을 나타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조사보고서에서 “산업구조가 공학주도에서 과학주도로 바뀌고 있다”면서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과학이 강한 나라가 부가가치를 독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 일본 등의 연구소에서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각국 기초과학 논문 수준

분야미국영국한국일본
미생물학4211-38-35
분자생물학3725-76-27
면역학29-4-60-19
약리학3458-63-25
컴퓨터과학336-47-61
화학5521-43-6
물리학5924-45-8
생물학 및 생화학4011-64-19
수학3036-40-24

▽21세기 산업의 특징〓일본 노무라 연구소는 최근 “21세기 들어 산업간 경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며 “조립보다는 원천기술,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 기초과학이나 지식집약도가 경쟁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국가조사위원회(NRC)는 이를 “과학과 산업간의 거리가 짧아지면서 산업구조가 ‘공학주도’에서 ‘과학주도’로 바뀌고 있다”고 표현하고 “과학이 산업혁신을 주도하는 시대가 왔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기계, 가전산업, 철강 등 공학주도 산업은 끊임없는 공정기술의 발전으로 점진적으로 기술혁신이 이루어진다. 반면 바이오, 신소재, 정보기술 등 과학주도 산업은 천재적인 과학자에 의해 혁신이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또 경쟁우위도 ‘특허’ 등 지적재산권 확보에 달려 있다.

▽기초과학의 나라별 비교〓미국은 18개 분야에서 모두 높은 수준을 나타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국으로 나타났다.

스위스도 전분야에서 평균이상으로 나타났다. 영국이 18개 분야중 면역학을 제외한 17개가 평균이상, 덴마크와 벨기에가 14개, 이스라엘과 핀란드가 12개, 스페인은 4개 분야가 평균이상이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논문의 질이 높지만 평균이상인 분야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변화 필요〓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황희 박사는 “그나마 일본은 부품이나 기계산업에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지식과 장비를 외국에서 ‘턴키베이스’로 들여온 한국은 값싼 인건비와 공장운영기술이 경쟁력의 원천인 장치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발전의 벽’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또 대학―실험실 창업―대기업간에 연구개발(R&D)에 대한 새로운 협동체계가 중요하다.

생명공학연구원 이인실 박사는 “무엇보다 최고통치권자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과학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국가적 비전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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