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호표/“사모님, 차(車)부터 파십시오”

  • 입력 2001년 3월 18일 19시 19분


최근 서울의 한 대입학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2002학년도 대입 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학부모 대상’이었지만 100여명의 참석자 100%가 현재 우리 사회 ‘교육 총괄도우미’의 주체요 실세인 학모(學母)였다.

“사모님, 차부터 파십시오.”

맨 먼저 ‘주제발표’에 나선 학원선생님이 말했다. 참석자들이 웃자 선생님은 정색하고 말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어 등장한 선생님이 부연 설명했다. “차만 팔아서 되겠습니까? 50평짜리 아파트를 30평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까짓 그랜저 중고차 한 대 팔아봐야 학원 등록 몇 번이나 하겠습니까?”

과목별 각론에서 국어선생님이 말했다. “국어는 이해가 아니라 암기입니다. 절대 애들에게 문제지를 풀라고 하지 마십시오. 풀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문제를 찍어 줄 테니 외우도록 하십시오.” 참석자들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데…” 하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국어 문제는 머리가 아니라, 눈으로 푸는 것입니다.”

수학선생님이 나섰다. “애들을 패야 합니다. 1주일을 안 패면 누구도 수학문제를 풀려 하지 않습니다. 학원의 매는 실력제고용입니다.” 영어선생님은 “영어란 찍어주는 것을 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요대학의 입시요강과 ‘중간고사대비 문제집’을 나눠주었다. 문제집에는 최근 수년간 주변 학교에서 출제한 문제들과 출제 경향을 분석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선생님이 덧붙였다. “우리는 수십년간의 문제지를 다 갖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바뀌고 시험이 바뀐다고 하지만,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고교과정은 고교과정이지 대학과정을 고교에서 가르칩니까?”

참석 엄마들끼리 2차 세미나가 열렸다. 엄마들은 학원측의 ‘네거티브 전략’을 알면서도 세미나 내용이 ‘옳다’고 생각했고 학교와 학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갭은 공허한 말과 냉엄한 현실의 괴리이기도 했다. “학교는 협동심 전인교육 독서 음악감상의 중요성을 말로 강조합니다. 학원은 현실을 직시하고 꼭 필요한 것을 ‘찍어’ 주었습니다.” “인간성교육과 세심한 배려도 학원쪽이 나아요. 하루만 빠지면 집에 전화를 하는 것은 학원이지 학교가 아닙니다.”

한 엄마는 고교생 아들에게 “그 학원 수학선생님 팬클럽 만들자”고 말했다. 아들이 말했다. “적어도 공부에 관한 한 학원이 더 세심하게 배려해요. 그렇다고 학교에서 생활쪽을 더 배려하는 것도 아니에요.”

교육인적자원부는 17일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를 통해 사교육비와 조기유학 및 교육이민 증가 등 공교육 붕괴현상에 따른 위기극복을 위해 ‘이상적 학교모델’ 시범학교 운영, 학급당 학생수 줄이기, 교사 해외연수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개선책은 성공하면 좋지만 실제 개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우리의 교육문제는 이제 정책의 좋고 나쁨을 넘어 국민 모두의 총체적 의식과 문화의 문제로 전이돼 있다. 우리 모두는 교육이 문제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동시에 교육개혁에는 본능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교육전쟁’이 길고도 지루한 인내심 싸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호표<부국장대우 이슈부장>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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