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초저금리시대’ 괴로운 퇴직자…예금깨 ‘연금생활’

입력 2001-03-16 18:42수정 2009-09-2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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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명예퇴직한 김모씨(52)는 당시 명예퇴직금 등으로 받은 2억원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 두었다가 최근 이 돈을 찾았다. 연 6%의 정기예금 금리로는 이자가 월 100만원밖에 나오지 않아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웠기 때문. 대신 김씨는 이 돈을 한꺼번에 노후연금신탁에 맡기고 17년에 걸쳐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함께 지급받기로 했다. 이럴 경우 원금을 까먹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월 140만원가량 받을 수 있다는 것.

“원금을 찾아 쓴다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도리가 없잖아요. 당장 생활이 안되는데. 그리고 10년 뒤 일을 어떻게 압니까? 그동안 금리가 다시 오를지도 모르잖아요.”

월 수령액을 높이기 위해 이런 상품을 선택하는 고객이 부쩍 늘고 있다. 금리가 연 6%대로 떨어지자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씨처럼 퇴직 후 이자소득으로 생활비를 꾸려 가는 사람들은 요즘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은행 재테크 상담 창구 직원들도 뾰족한 수가 없어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이다. 신한은행 한영진과장은 “3억원을 정기예금에 맡길 경우 125만원이 월 이자이지만 이를 노후연금에 일시에 맡길 경우 월 147만원 정도가 나오며 1년 뒤 해지하면 원금을 그대로 찾게 된다”고 조언했다. 연 0.1%의 금리가 아쉽다 보니 나온 ‘복잡한 틈새 재테크 기법’인 셈이다.

한국은행은 16일 2월중 신설 법인수가 3294개로 1월의 2762개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창업붐도 저금리상황과 직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저금리에 견디다 못한 이자 소득자들이 과감하게 창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 창업 자문을 해주는 한국창업전략연구소 등에는 최근 퇴직자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소장은 “통상 명예퇴직자들은 창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하고 창업에 뛰어든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저금리를 견디다 못한 퇴직자들이 충분한 검토없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또 요즘 관심을 갖는 분야는 임대사업. 은행에 맡긴 돈을 찾아 서울 한남동 반포동이나 종로구 등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아파트를 1, 2채 가량 사들여 이를 월세로 받을 경우 연 12∼13%의 이자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직장인 중에서도 자기 집을 월세로 놓고 자신은 좁은 평수의 전세로 옮기곤 한다. 그렇다보니 요즘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전세가 아닌 월세로 나온 임대주택이 많다. 저금리시대의 풍속도 중 하나다.

고금리에 이끌려 비제도권을 찾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채시장에서는 최근 “돈을 굴릴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부쩍 많이 걸려 온다는 게 서울 명동의 한 사채업자의 전언. 중개상을 잘 잡을 경우 연 15%의 수익은 올릴 수 있다는 기대로 문의를 한다는 것. 전주(錢主)들은 주로 강남의 부유층과 그동안 이자소득으로 지내온 퇴직자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유사 금융기관의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은행을 퇴직한 지 2년이 되는 이모씨는 한 유사 금융업체로부터 지난달 330만원을 맡기면 월 10만원의 이자를 준다는 말에 솔깃했다.

“고객이 투자한 돈으로 인형판매기를 사들여 이를 운용한 수익을 나눠주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연 30%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업자의 말에 과감하게 3300만원을 맡겼다. 그러나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 회사가 금융감독원의 사이비금융기관 단속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감원은 약 20만여명이 유사 금융기관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은 박재환금융시장국장은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이 저금리체제에 익숙하지 못해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200조원이 넘는 부동 자금이 투자처를 제대로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진·김승련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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