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석연치 않은 공기업사장 경질

  • 입력 2001년 3월 16일 18시 29분


정부가 15일 공기업 사장 6명과 감사 1명을 전격 경질키로 했다. 공기업 최고 경영진이 경영자질과 관련해 무더기로 문책성 퇴진을 당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개혁 무풍지대로 여겨져 온 공기업에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 모양이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비리가 있는 공기업 임원에 대해 상시 퇴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바람직하다. 낙하산인사로 자리를 차고앉은 일부 공기업 사장들의 비전문성, 반개혁적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정부가 수용했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더기 인사 조치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우선 경질 대상으로 통보된 사장 가운데 절반 이상은 임기가 불과 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다. 상시 퇴출의 모양을 갖춰 개혁성과를 과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 기간조차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궁금하다. 내부에서 기용돼 전문성이 강하고 경영평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도 경질 대상에 포함돼 해당기업이 반발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당국은 경영 평가와 리더십 통솔력 도덕성 등을 감안했다고 주장하지만 비계량적 요소들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모든 사람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사유가 정당하다면 정부가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이번 조치가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후속 인사의 과정과 대상이다. 정부 책임자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항간에서는 ‘정권이 끝나기 전에 챙겨줘야 할 사람들이 많아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자리를 미리 비워 두려는 조치’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공기업 개혁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재 풀을 만들어 민간이 참여한 가운데 공정하게 경영자를 선발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일단 긍정적이지만 그 정신이 얼마나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정부출자기관의 사장추천위원회 등 지금까지의 관행으로 볼 때 정부가 이 위원회의 권위와 독립성을 얼마나 존중할지 궁금하다.

우리는 계속될 공기업 사장 교체에서 정부의 약속 준수 여부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인사와 관련한 정부의 도덕성은 공기업 사장의 경영상 도덕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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