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business]'행동주의 경제학'이 뜬다

  • 입력 2001년 2월 15일 18시 52분


수십년간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개인을 언제 어디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 본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한 번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안주를 내놓았다. 손님들은 그 안주를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집어먹는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살 때 10달러가 더 싼 제품을 사기 위해 멀리까지 원정을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TV를 살 때는 10달러를 아끼려고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택시 운전수들은 자신이 목표로 했던 수입에 도달하면 그 날의 일을 접는다. 즉 손님이 많은 날 일을 적게 하고, 손님이 없는 날 더 오랫동안 일을 하는 셈이다.

이 사례들은 모두 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수집한 것들이다. 세일러는 이 사례들을 ‘예외적인 것들’이라고 부른다. 주류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일러는 1970년대부터 이른바 ‘행동주의 경제학’이라는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는 ‘행동주의 경제학’이라는 이름도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학계에서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는 이 ‘행동주의 경제학’은 사실상 세일러와 그 밖의 몇몇 학자들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주의 경제학을 간단히 설명하면 경제학과 심리학을 결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이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동만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심리적 요인을 경제학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밖에도 사회학과 인류학을 경제학과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세일러는 행동주의 경제학의 연구결과를 경제정책에 반영한다면 유난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미국의 저축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세일러는 UCLA 대학의 슐로모 벤자치 교수와 함께 ‘내일 더 많은 저축을’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마련,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의 골자는 기업체 직원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미래 봉급 인상분을 퇴직 후를 대비한 예금 구좌에 넣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돈을 떼어 저축하는 것보다 이처럼 미래의 수입을 저축용으로 떼어놓는 것을 덜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시카고의 한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저축액이 1년 반만에 세 배나 뛰어오를 정도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한편 기업들이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직원들의 봉급을 깎지 않는 것 역시 행동주의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봉급을 깎을 경우 직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일의 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주 이상하게도 미국 사람들은 봉급을 깎는 것보다는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것이 더 ‘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행동주의 경제학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버드, MIT, 스탠포드, 시카고, 프린스턴, 예일, UC 버클리 등 쟁쟁한 대학들이 행동주의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행동주의 경제학은 앞으로 요즘 유행하고 있는 규제철폐 바람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캘리포니아 전력위기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중의 손에 자유시장을 맡겨야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규제철폐의 이론적 근거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은 모든 사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만을 한다는 가정은 언젠가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20010211mag―ec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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