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러시아경제 동면서 깨어나나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31분


《‘러시아 경제, 정말 되살아나고 있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해마다 추락을 거듭해온 러시아 경제가 지난해 오랜만에 ‘국내총생산(GDP) 7% 성장’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서는 전기를 맞았다”며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러나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 대통령 경제고문은 “시장개혁의 속도를 늦추면 다시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아직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많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여전히 러시아를 ‘위험이 큰 시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회복은 유가(油價)의 덕이 컸다는 게 ‘비관론자’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배럴당 3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석유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러시아 경제가 살아나는 계기가 됐다는 것. 지난해 러시아는 500억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단순히 유가 덕분이 아니라 경제가 구조적으로 좋아졌다고 보고 있다. 산업생산이 9% 성장하는 등 멈춰섰던 공장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98년 대외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 사태에 따른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또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정부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고 루블화도 안정을 되찾은 한편 살인적으로 치솟던 인플레이션도 20%대로 잡혔다는 게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여전히 러시아 경제가 허약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유가에 너무 의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 올해의 모든 경제계획이 배럴당 21달러 이상의 유가를 전제로 짜여졌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할 경우 경제가 다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와는 달리 러시아 국민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낮은 실정. 경제전문가인 블라디미르 벨랴코프는 “일반 국민은 경제가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져 근로자 월 평균임금이 98년 108달러에서 지난해엔 85달러로 떨어졌다는 것. 반면 저녁 한끼에 수백달러하는 모스크바의 고급 일식점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얻지 못할 정도로 부유층의 씀씀이는 큰 편이라고 벨랴코프씨는 꼬집었다.

또 실업률이 10%를 넘고 있는 데다 해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외화 유출과 1500억달러의 외채도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러시아 경제의 향방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제 회복이 고유가에 의존한 ‘반짝 성장’이었는지, 아니면 오랜 침체를 깨고 회복단계로 들어섰는지를 올해의 움직임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투자자들 "매력있지만 위험 도사린 시장"▼

“올해 러시아 시장의 전망은 밝다. 하지만 여전히 변수가 많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의 관계자는 올해 러시아 경제를 이렇게 전망했다. 삼성 LG 등 러시아의 한국기업은 지난해 가전과 자동차 시장 등에서 오랜만에 ‘재미’를 봤다. 구매력이 높아지는 등 소비가 살아난 덕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직접투자나 공격적인 마케팅은 망설이고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투자위험이 아직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방이나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통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79억달러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2%가 늘어났다. 그러나 직접 투자는 35억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90년대 초반 러시아 특수(特需)를 기대해 석유와 가스 등 자원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보고 철수했던 경험 때문에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지금의 외국인 투자는 소비재 생산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영국 담배회사인 갤러허 그룹이 러시아에 4억달러를 투자했다.

미국계 투자자문회사의 한 분석가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시장개혁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너무 더디고 많은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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