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필리핀 시민혁명 이후의 과제

입력 2001-01-22 16:29수정 2009-09-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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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고 무능한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밀어내는 또 하나의 시민혁명을 이룬 필리핀의 미래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필리핀 시민들은 86년에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하야시킨 바 있다.

98년 선거에서 이겨 대통령에 오른 에스트라다는 오랜 도박과 술친구들의 검은 손에 둘러싸여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그는 영화배우로서 인기를 누렸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향의 민선시장을 거쳐 상원의원과 부통령에 당선되는 등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된 것은 고생스러운 현실에서 자신들을 구해 줄 지도자를 희구해 온 빈민계층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덕이었다.

그러나 에스트라다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심야 술파티 석상에서 주요정책을 결정해 비서진조차 당황했으며 결국 비서실장이 이를 폭로하고 사퇴했다. 또 주가조작에 개입한 친구를 봐달라고 관계 당국에 압력을 넣었다거나 자신이 직접 불법 도박업자로부터 거액의 뇌물상납을 받았다는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아시아 국가중 서구화에서 선두주자였던 필리핀이 오늘날 정정 불안과 함께 경제적 궁핍을 겪는 것은 집권층의 부패와 비리 때문이었다.

시민혁명으로 새 정부의 수반이 된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부유층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여성 엘리트라는 점 때문에 다수 빈민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약점이다. 에스트라다에게 기대를 걸었던 필리핀의 영세민들은 아로요 신임 대통령이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소식이다.

에스트라다를 굴복시킨 피플 파워의 주도세력은 마닐라의 중산층 이상 시민과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한 아로요 대통령은 고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을 업고 급부상했지만 아직 전국적 기반에서는 취약하다. 에스트라다에게 표를 몰아 주었던 영세서민층과 아로요를 지지하는 중산층 사이에 국론분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필리핀의 피플 파워가 새 정부의 지도 아래 계층간 갈등도 원만히 해소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불의에 항거한 시민의 승리로 출범한 아로요 정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민통합인 것 같다. 그 다음에 빈곤문제 해결 등 경제개혁과 서정쇄신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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