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설 특집 추천 비디오, 명감독들의 데뷔작을 찾아서

  • 입력 2001년 1월 19일 18시 06분


한 해가 시작되는 설을 맞아 '시작'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명감독들의 데뷔작들을 모아보았다. 피터 잭슨부터 알란 파커까지, 지금은 각 장르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들의 '그때 그 시절'은 풋풋하기 그지없다. 설 연휴 따끈한 아랫목에서 헝그리 정신과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명감독들의 데뷔작들을 차근히 골라 보는 것은 어떨까.

◆고무 인간의 최후 Bad Taste

처음부터 못 만들기로 작정한, 제목처럼 아주 '나쁜 맛'의 영화다. 공포영화의 대가답게 61년 '할로윈 데이'에 태어난 피터 잭슨은 <선더버드>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스톱모션 기법을 차용한 인형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돈은 없고 재능만 넘쳤던 피터 잭슨은 정식이 아닌 좀 다른 경로의 데뷔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원맨 세션의 비디오용 영화가 바로 <고무 인간의 최후>다.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매일 밤 고무인형 소품을 만들기 시작한 피터 잭슨은 친구들을 배우로 섭외하고(그들은 모두 이 영화에서 두 개 이상의 배역을 맡았다) 그 역시 데릭 역으로 출연해 데뷔작을 완성했다. 5년간 틈틈이 제작된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컬트의 제단'에 바쳐졌으며 칸영화제에 출품되는 등 전세계 배급망을 타고 활발히 보급되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대립구도를 외계인과 지구방위대의 대결로 상징화한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조소와 재기 넘치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진정한 의미의 컬트영화다. 외계인을 블루칼라의 대변자로 그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 농기구를 들고 식량(인간) 사냥에 나선 외계인들의 모습이 귀엽다.

(감독·피터 잭슨/주연·피터 잭슨, 테리 포터, 크레이그 스미스, 더그 렌 딘 로리/1987/출시·시티라인)

◆돈을 갖고 튀어라 Take the Money & Run

영화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담가'임을 자랑하는 우디 앨런은 1966년 'What's Up Tiger Lily?'의 연출을 맡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작가, 감독, 배우 겸업 시스템을 선언하고 만든 최초의 데뷔작은 분명 <돈을 갖고 튀어라>다.

이 영화는 슬랩스틱 코미디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놀라운 데뷔작 중 하나다. 브룩클린 뒷골목에서 자라난 멍청한 강도 버질 스탁웰의 인생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쫓아가는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창조적인 캐릭터가 최초로 등장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엔 어느 모로 보나 부적절한 정서 불안자 캐릭터가 바로 버질 스탁웰이다.

멋진 갱스터가 되고 싶었던 버질은 정서 불안과 칠칠맞은 성격 때문에 강도질에서 매번 허탕만 치고 만다. 경찰을 향해 쏜 총구 안에서 총알 대신 나이터 불이 켜지질 않나, 경찰을 위협하기 위해 만든 비누 권총이 비에 젖어 갑자기 거품으로 변하질 않나, 갖가지 우디 앨런 식 재치가 골고루 발휘된다.

그러나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우디 앨런은 언제나 '백인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며 흑인들을 소외시켜왔다. 어쩌면 그는 백인들에게만, 특히 뉴요커들에게만 '최고의 감독'일지도 모른다.

(감독·우디 앨런/주연·우디 앨런, 자네트 마골린/1969/출시·콜롬비아)

◆엘마리아치 El Mariachi

완성도보단 '값싼' 제작비로 더 유명해진 영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은 23세의 젊은 나이에 단돈 5백만 원으로 영화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엘마리아치>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데뷔작이 아니다. 진정한 데뷔작은 자신의 막내 동생을 주인공으로 한 16mm 영화 <베드 헤드>. <엘마리아치>는 오랜 습작기를 거친 로드리게즈 감독의 '프로 데뷔작' 정도로 기록해야 적당할 듯하다.

신문에 '로스 홀리건즈'라는 만화를 연재했던 로드리게즈 감독은 자신의 프로덕션 이름을 '로스 홀리건즈'라 정하고 그곳에서 <엘마리아치>라는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오랜 친구인 카를로스 갈라르도가 멕시코 국경 마을 아쿠냐에 살고 있다는 걸 기억한 로드리게즈 감독은 그곳에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저예산 '네오 스파게티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로케장소는 카를로스가 소유한 농장과 집이었고 배우는 모두 친척 혹은 친구였다. 그래도 모자란 돈은 자신의 피를 팔아 충당했다.

이렇듯 어렵게 태어난 영화가 바로 <엘마리아치>다. 멕시코 민속악사 마리아치가 살인자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고 있는 영화. 물론 편집, 시나리오, 사운드 리코딩, 촬영 등은 모두 로드리게즈의 몫이었다.

(감독·로베르토 로드리게즈/주연·카를로스 갈라르도, 콘주엘로 고메즈/1988/출시·콜롬비아)

◆에어플레인 Airplane

영화계의 '삼총사'는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삼형제' 짐 아브라함스,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감독이다. 데이비드 주커는 <총알탄 사나이>의 연출자로, 제리 주커는 <사랑과 영혼>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흔히 이 삼형제를 묶어 'ZAZ 사단'이라 부른다.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삼각 제작방식을 도입한 이들은 기획과 각본, 연출을 합동으로 추진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유기적으로 보완해왔다. ZAZ 사단의 맏형이 바로 짐 아브라함스. <못 말리는 람보> <못 말리는 드라큘라> 등 '못 말리는 시리즈'의 제조자로 유명한 짐 아브라함스 감독은 <에어플레인>을 만들며 '패러디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재난영화(Panic Movie)를 풍자한 이 영화는 350만 달러의 제작비로 8천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여 파라마운트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무서운 재난 영화의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풍자한 상황 개그의 최고봉.

패러디 영화의 왕자 레슬리 닐슨은 이 영화에서 비교적 고상하게 등장하는 편이며 반면 로버트 헤이즈와 줄리 헤거지는 멍청할 만큼 덜 떨어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에어플레인>은 짐 아브람함스의 데뷔작이자 패러디 영화의 교과서로도 불리는 영화다.

(감독·짐 아브라함스/주연·로버트 헤이즈, 줄리 헤거지, 레슬리 닐슨/1980/출시·CIC)

◆벅시 멜론 Bugsy Malone

1930년대 미국은 대공항의 시작을 알렸던 월가의 주가 폭락과 자본주의 경제학의 제1원칙이었던 '보이지 않는 손'의 붕괴로 극심한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실직자들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이라는 환각제를 섭취했으며 덕분에 그 시대의 갱들은 서민들의 약탈자가 아니라 '해방군'이 되었다.

이런 멋진 갱들의 역사를 영화 속으로 불러온 것은 <대부> 시리즈였고 <대부>를 패러디해 '마피아 영화에 관한 재담'을 코믹하게 선보인 영화는 바로 <벅시 멜론>이었다.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마피아가 미국자본주의의 비열한 참상을 보여주는 데 유용했다면, 알란 파커에게 그것은 희화화의 대상으로써 가장 적절한 듯 보였다. 그가 제작한 <벅시 멜론>은 일반적인 마피아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영화.

한 사람의 어른 주인공도(조디 포스터도 이 영화에선 '아역'이었다), 한 자루의 총도 등장하지 않는 철저한 아동용 마피아 영화가 바로 <벅시 멜론>이다.

무기를 만드는 댄디파와 밀주업 전문인 샘파의 패권다툼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미국 마피아계의 대부였던 벅시를 주인공으로 기막힌 코믹 패러디를 남발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마피아들이 아이들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감독·알란 파커/주연·조디 포스터, 스코트 바이오/1976/출시·시네마트)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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