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경희/청소년의 욕구에 눈맞춰 보자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27분


연예인을 쫓아가던 여중생이 압사한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청소년기는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는, 말하자면 자아에 눈뜨는 시기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많은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가정과 학교에서 그들이 호기심을 충족하고 열정을 발산하는 데에는 많은 속박과 제한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가정과 학교로부터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욕구를 분출시킬 탈출구를 마련한다.

청소년의 현실 탈피의 한 유형이 연예인을 우상화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데에는 성인들의 경우와 같은 납득할 만한 논리적 이유는 없다. 단지 좋으니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일 뿐이다.

청소년기는 급격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로 심리적 위기를 맞는다. 이런 심리적 위기는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안, 성인과 사물을 보는 이치나 사회 현상을 파악하는 관점의 차이, 또래끼리의 갈등 등에 의해 야기되는 감정적 긴장에 기인한다. 이런 감정적 긴장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청소년 자신에게는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사회적 경험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위기와의 충돌은 청소년의 자아 확립에 빼놓을 수 없는 조건도 되지만 동시에 위기 대처 능력 부족으로 위험에 빠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중생 압사사건도 이런 위험 요인이 불행하게도 현실화한 것일 뿐이다. 사회가 청소년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보내지 않으면 비슷한 사건은 또 일어날 수 있다.

우상을 쫓아 정신 없이 뛰고 달리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거리나 주택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욕구를 분출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정신적 치료가 될 수 있다. 이 시기를 넘기면 열정은 제자리를 잡고는 한다. 무조건 손가락질하거나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소년은 그들의 동경을 충족시켜 주는 그들만의 사회를 스스로 만들려고 한다.

특정 연예인을 우상으로 맹신하는 행동은 어른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강초현양도 인터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연예인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 꿈 많은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그런 소박한 바람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과 정도가 다를 뿐이다.

보다 관대한 마음으로 청소년들의 행동을 보면, 납득이 가는 부분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는 청소년의 자아를 확고하게 다져 나가도록 해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삼위일체가 돼 청소년들의 고민과 동경에 대해 대화하고 설득하며 함께 고뇌하고, 고민과 동경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과도기적인 존재인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 재산이다.

남경희(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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