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칼럼]문용식 나우콤 이사/ PC통신이 사는 길

  • 입력 2001년 1월 15일 09시 18분


필자는 PC통신회사에 몸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PC통신은 망한다’고 외치고 다닌다. 누가 들으면 자기 얼굴에 침뱉는 짓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내 직업을 아낀다고 해도, PC통신으로는 밥을 빌어먹을 수가 없는 것을.

따지고 보면 PC통신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모뎀접속을 할 수 있는 전용전화망에 VT 기반의 텍스트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게 PC통신 서비스다. 그런데 지금 시장의 추세가 어떤가.

다들 알다시피 갈수록 초고속망이 확산되고 있다. ADSL망이니, 케이블망이니 해서 단돈 3,4만원이면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통신서비스가 급성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초고속망 가입자의 성장 추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2000년 초에 150만 가구가 사용하더니, 단 1년만에 400만 가구로 늘었다. 가구 대비 보급율에서만이 아니라 절대적인 숫자에서도 세계 1위다. 사정이 이럴진대 누가 56K 모뎀으로 전화접속망을 통해 느려터진 통신서비스를 사용할 것인가?

또 정보 서비스의 표준은 이미 웹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웹 브라우저 하나면 인터넷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이용할 수가 있다. 게다가 대부분이 무료 서비스다. PC통신이 제공해왔던 컨텐트, 커뮤니티, 커뮤니케이션보다 훨씬 더 전문화되고 다양한 서비스가 인터넷상에는 무료로 널려 있다. 이런 상태에서 누가 통신 에뮬레이터를 띄워서 파란 바탕에 흰 글자가 뿌려지는 텍스트 기반의 PC통신 서비스를 돈내고 사용하겠는가?

결국 PC통신은 초고속망의 확산과 무료포탈의 급팽창 사이에서 가랭이가 찢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사용자도 정체상태고 매출도 급격히 줄어든다. PC통신 사업자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재미보고 있다는 사업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듣기로는 한국에서 1등 한다는 어느 PC통신 사업자는 아직도 미국의 AOL을 흉내낸다고 한다. 아마 이런 생각일 것이다. 미국의 AOL이 별거더냐, 그네들도 사업의 본질은 PC통신 아니냐, 그네들이 2000만 가입자를 바탕으로 타임워너까지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냐는 논리다.

그러나 필자는 그 사업자에게 ‘제발 꿈깨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의 PC통신 사업자는 미국의 AOL처럼 독점적으로 대형화되어 있지 못하다. 모두 다 고만고만한 상태에서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한국의 인터넷 발전속도는 너무 빨라서 AOL처럼 PC통신이 인터넷까지 포섭하여 ‘또 하나의 표준’으로까지 성장하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 한국의 PC통신 사업자들은 더 이상 ‘AOL처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오로지 ‘AOL과 다르게’만을 고민할 때인 것이다.

그러면 PC통신이 살 수 있는 길은 과연 없을까? 필자는 3가지를 권하고 싶다.

첫째, Access를 버려라. 각 사가 가지고 있는 전용 전화접속망을 버리라는 말이다. 모든 PC가 인터넷에 물려 있는 ‘Always On’ 환경이 다가오고 있는 상태에서 전화접속망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전화망은 비용만 잡아먹을 뿐이다.

둘째, 웹표준을 수용하라. 더 이상 PC통신의 비표준, 전용 텍스트서비스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새로운 기술적인 트렌드도 수용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코스트도 많이 든다. 고객의 서비스 사용 양태 또한 갈수록 웹표준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셋째, 강점을 살려라. PC통신이 살아남으려면 변신할 수밖에 없지만, 어디까지나 자기가 가진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신하라는 말이다. PC통신에는 양질의 유료고객과 양질의 커뮤니티, 양질의 컨텐트가 있다. PC통신 사업자처럼, 백만명이 넘는 유료고객을 관리한 경험과, 다양한 빌링수단에 정교한 빌링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는 온라인사업자는 드물다. 포탈 사업자들? 유료고객을 관리하고, 다양한 빌링을 해본 경험이 전무하다. 이런 게 눈에 안보이면서도 지극히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나우콤에서는 기존의 PC통신 ‘나우누리’ 대신에 새로이 ‘별나우’라는 유료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최대의 화두는 ‘서비스 유료화’일 것이다. 별나우는 커뮤니티 서비스의 전면적인 유료화모델이자, 인터넷 시대에 PC통신의 변신모델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과감하게 도전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PC통신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약력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 수료

BNK (한국출판정보통신) 이사

현재, 나우콤 이사/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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