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時宜(시의)

  • 입력 2001년 1월 11일 19시 00분


비 오는 날 짚신은 팔리지 않으며 맑은 날 우산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때가 있으며 아무리 훌륭한 재주도 때를 만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英雄(영웅)은 亂世(난세)에 나타나며 聖君(성군)은 太平聖代(태평성대) 때에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列子의 寓話(우화)는 示唆(시사)하는 바가 많다.

옛날 魯(노)나라에 施氏(시씨) 성을 가진 이가 있었는데 큰아들은 學問을 좋아했고 작은아들은 兵法을 좋아했다. 두 아들은 각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나섰다. 먼저 큰 아들은 齊(제)나라를 찾았다. 마침 학문을 좋아했던 齊侯는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를 公子의 교사로 채용했다. 한편 兵法을 익힌 둘째 아들은 楚나라로 가서 장군이 되었다. 이리하여 施氏의 집안은 단숨에 富裕(부유)하게 되었다.

施氏의 옆집 孟氏(맹씨)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공교롭게 배운 것도 施氏의 아들과 같았다. 하지만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富貴功名(부귀공명)을 얻을 수 있는 妙策(묘책)을 두 아들에게 물었다.

이제 孟氏의 두 아들이 잔뜩 희망을 품고 집을 나섰다. 큰아들은 秦(진)나라로 갔다. 하지만 秦王의 대답은 의외였다. “지금 諸侯(제후)들은 어떻게 하면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느냐에 血眼(혈안)이 되어 있소. 당신처럼 무슨 仁義니 하는 따위로 治國했다가는 亡國을 자초할 것이오” 하면서 옥에 가두고는 宮刑(궁형)을 내린 다음 釋放(석방)해주었다. 한편 둘째아들은 衛(위)나라로 갔는데 그 역시 의외의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衛侯가 말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에 싸여 있소. 그래서 우리는 大國은 섬겨야 하고 小國은 잘 어루만져주어야 합니다. 당신같이 武力에 호소했다가는 머지 않아 망하고 말 것이오. 그런데 지금 당신을 풀어주었다가는 隣接國을 도와 後患(후환)을 남기는 꼴이 될 터이니 그냥 보낼 수는 없소”하고는 두 다리를 자른 다음 돌려보내 주었다.

列子는 말한다. “모든 것은 時宜에 적합하면 昌盛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失敗하고 만다. 배운 것이 같지만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방법이 틀려서가 아니라 時宜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고로 성공의 첫 단계는 時宜에 迎合하고 즉시 행동에 옮길 것이며 變化하는 狀況에 재빨리 적응하는 것이다. 이는 智謀에 속하는 것으로 智謀가 없으면 설사 孔子라도 뜻을 펼 수가 없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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