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홀스또메르' 인간 향한 풍자와 조롱의 발길질

  • 입력 2000년 12월 4일 19시 04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15일부터 서울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공연되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 원작의 연극 ‘홀스또메르’. 정답을 주지는 못해도, 그런 질문을 한번쯤 떠올리게 할 작품이다.

‘홀스또메르’는 말(馬)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러시아어로 힘차게 달린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말 홀스또메르(유인촌)의 드센 팔자가 펼쳐진다.

작품은 한때 화려했던 과거를 지닌 홀스또메르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 말들에게 자신의 ‘마생(馬生)’을 들려주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도입부만 살짝 엿봐도 그의 이야기가 인간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발길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거세 당한 얼룩말의 비극적 최후◇

홀스또메르의 불행은 그의 뜻과 관계없는 것이어서 더 비극적이다. 다른 말들이 천하다고 따돌리는 얼룩빼기 무늬에다 거세(去勢)를 당한 상태이고 또 인간의 소유물이기도 한 삼중고에 시달린다. 결국 홀스또메르는 인간에 의해 도살을 당해 최후를 맞는다.

그렇지만 홀스또메르와 비교되는 그의 주인 세르푸홉스코이 공작(박선우)의 삶은 어떤가. 극중에서 공작은 홀스또메르와 비슷한 시기에 죽는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는 인간에 대한 도전적인 화두를 던진다.

‘도살당한 홀스또메르의 고기는 들개와 늑대들이 뜯어갔죠. 나머지 뼈는 어느 농부가 자기 일을 하는 데 써 버렸습니다. 죽기 전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됐던 공작은 죽어서도 좋은 제복과 멋진 구두 차림으로 관속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피부와 살과 뼈는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 농민의 삶을 모티브로 이 ‘우화(寓話)’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새 밀레니엄의 첫해가 저무는 요즘 인간은 말(馬)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위대한 이름이 주는 중압감과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묵직한 주제 등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뮤직 드라마라는 형식으로 누그러뜨렸다. 음악이 스토리를 압도하곤 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의 이해를 돕는 감성적 도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

◇'유시어터' 원작에 가깝게 재공연◇

‘홀스또메르’는 현재 러시아 국립연극극장 ‘니키타의 문’ 대표이자 공훈예술가인 마르크 로조프스키의 희곡과 연출을 통해 73년 연극으로 태어났다. 이 작품은 또 79년 미국 뉴욕 헬렌 헤이스극장에서 공연, 브로드웨이에 상륙하기도 했다.

97년 호암아트홀 공연이후 3년만에 재공연되는 이 작품의 특징은 무엇보다 원작에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극단 ‘유시어터’는 지난달 로조프스키를 초청해 워크숍을 가졌다.

뮤지컬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역으로 나온 김선경이 홀스또메르의 첫 사랑 바조프리하 등 1인3역을 맡았다. 정규수 역시 마부 비시카 등 1인3역으로 출연한다. ‘댄스 컴파니 조박’의 조성주가 참여해 춤의 비중이 높아졌다. 15일부터 2001년 1월21일까지 . 1만5000∼3만원. 02―3444―0651

◇말 역할 유인촌의 말◇

사재 30여억원을 들여 지난해부터 서울 청담동에 300여석 규모의 연극전용극장 ‘유시어터’를 운영 중인 유인촌(50).

그는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회장(최불암)의 둘째 아들로 나오는 등 탤런트로 널리 알려졌지만 30년간 매년 한편이상 연극에 출연해 본인은 연극인임을 더 내세운다. ‘홀스또메르’로 3년만에 다시 늙은 말로 출연하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4억 중 2억5천만원이 날아갔죠, 그래도 작품은 남았습니다〓97년 호암아트홀 공연 당시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도 못 건졌다면서.

△TV드라마는 60대가 돼서나〓극장장에 극단 대표, 배우까지 1인 3역을 하느라 TV드라마는 엄두도 못낸다면서. ‘전원일기’ 빼고는 당분간 연극에만 전념하겠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2000달러에 샀습니다. 속이 시원하더라구요〓97년 공연은 실제로 저작권자와 협의가 없는 ‘무허가 공연’이었다는 것. 이번에 저작권을 지닌 마르크 로조프스키를 초청하면서 아예 저작권 계약을 했다고.

△저번에 소화가 좀 덜 됐지만 이번엔 시원합니다〓극단 단원들과 함께 로조프스키의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홀스또메르의 도살 장면 등 모호했던 대목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했다면서.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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