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헤드헌터등 확보경쟁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59분


가정용 에어컨을 오래 쓰다보면 냉각효과도 떨어지고 이슬이 맺히게 된다. 내부의 열교환기가 부식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한 가전업체가 ‘플라즈마 코팅’기술을 활용해 이 같은 결점을 개선했다. 이 기술이 러시아 과학자가 개발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치냉장고 기술과 비디오 다이아몬드헤드코팅기술, 홍채인식기술의 원천도 따지고 보면 러시아다. 이 때문에 최근 세계를 휩쓰는 정보기술(IT)과 하이테크 열풍 속에 러시아의 기초과학기술과 우수한 인력이 단연 주목받고 있다.

모스크바 중심가 아르바트거리에 있는 LG모스크바 기술센터. 신창기(申昌基) 과장은 요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러시아 연구소와 기술협력사업을 관리하는 게 주 업무나 요즘은 LG 계열사에서 ‘사람을 구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헤드헌터’ 노릇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신과장은 “특히 인터넷사업 및 IMT―2000사업과 관련된 인력을 구해달라는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울에서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도 사람 구하기는 그리 만만치 않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의 쓸만한 인력은 이미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지로 떠났다. 그래서 최근에는 노보시비르스크와 톰스크 등 시베리아와 우크라이나 등지로 원정을 가는 일이 잦다. 적당한 사람을 찾았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비자 수속까지 마쳤는데 서방기업이 더 좋은 대우로 유혹하는 바람에 눈앞에서 놓친 일도 있기 때문.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구인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 더욱 마음을 졸인다.

게다가 사후관리까지 해야한다. 한국에 간 러시아의 한 과학자가 향수병에 걸리자 신과장은 한국인에게 김치나 마찬가지로 러시아인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검은 빵’을 공수했다. 생활과 직장적응 여부도 틈틈이 챙겨야 한다.

러시아인은 이제 값싼 인력이 아니다. 주택비 항공료 등을 포함하면 한국인력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라는 것이 신과장의 설명이다.

러시아 과학기술자들은 기초가 탄탄해 응용력이 좋고 서방 기술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택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프로그래머와 정보통신 분야의 엔지니어, 소재(素材)분야 관련 기술인력이 가장 인기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90년 초부터 대거 이주한 유대계 인력을 활용해 최근 5대 IT강국으로 부상했다. 텔아비브 등의 벤처기업 연구실에서는 러시아어가 히브리어처럼 흔히 쓰이고 있다. 최근 각국은 러시아 과학자를 데려가거나 원천기술을 도입하던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필요한 인력을 직접 키우고 함께 기술 개발을 하는 방법으로 활용 폭을 넓히고 있다. LG 임형빈(任亨彬)상무는 “모토로라 인텔 등 서방기업은 장학금을 주며 우수한 러시아 공학도를 키우거나 전국 각지에 연구실을 설치하는 등 장기적인 기술협력에 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LG 삼성 등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도 비슷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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