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김재박의 야구세계 엿보기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6시 11분


김재박(46). 굳이 감독분류로 따지자면 그는 지장에 해당한다. 스파르타식으로 선수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맹장이 있는가 하면 융화 화합을 최고 덕목으로 치는 덕장형 감독도 있다. 김재박은 상황대처에 매우 능한 지도자, 즉 지장이다.

빠른 머리회전에 때로는 잔인할 만큼 강한 승부수를 띄워 상대팀 관계자는 물론 언론 종사자에게 된통 비아냥거림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게 좋은거'라는 말은 그의 사전에 없다. 즐기려고 했으면 감독 생활은 애시당초 하지 않았다는게 지장들의 공통된 철학이고, 이는 김재박 감독도 마찬가지다.

김재박은 96년 창단팀 현대 감독을 맡아 4시즌동안 우승 2차례, 준우승 1차례를 일궈냈다. 대단한 경력이 아닐수 없다. '좋은 선수들이 많으면 그만큼 우승 확률은 높고 감독은 자연스레 명장 대열에 올라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대의 우승신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김재박에게는 그만의 특별한 무엇이 있다.

▼아웃사이더 선수시절 생존법 터득▼

김재박은 54년 대구출생으로 올해 46세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토박이. 경북중학교 시절, 작고한 서영무감독 밑에서 야구를 시작한 김재박은 작은 키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대구는 날고 긴다는 야구엘리트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김재박은 갈 곳이 없었고 그를 받아준 팀은 서울의 대광고교. 이후 영남대를 거치며 절치부심의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의 마음속엔 어떤 웅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원점에서 출발하는 데는 오히려 아무런 연고도, 배경도 없는 아웃사이더들이 제격이다.

그의 이런 특성은 꿋꿋한 자기승부를 펼치는데 유리하게 작용해 왔는데, 이와 같은 점은 선배 감독들의 반응을 보면 알수 있다. 해태시절 한국시리즈 V9을 일궈낸 명장 김응룡 삼성감독은 김재박 현대 감독을 노골적으로 불편해한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김재박 감독의 평소 태도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한마디로 그의 야구 스타일이 싫다는 것이다. 상대가 싫어하는 야구스타일. 그것만 해도 벌써 성공한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김재박 감독은 "알고 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김응룡 감독의 '준동'에 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김응룡 감독과의 승부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던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그 가운데 김응룡 감독이 일부로 거명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김재박 야구를 인정한다는 얘기가 된다.

▼스타군단 일사불란한 지휘, 탄탄한 투-타 짜임새 만들어▼

현대 유니콘스에 팬이 몰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대는 96년 인천 연고로 들어온뒤 올시즌 SK 창단과 더불어 연고지를 내주고 서울 입성을 꾀했다. 서울 입성에 앞서 수원을 임시 연고로 사용하다 보니 인천에서도, 수원에서도 모두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떠돌이 신세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뿐 마운드의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과 박재홍 박경완 등은 다른 팀에서 따라오지 못할 특급멤버들이다. 스타군단을 장기판 말 다루듯 일사불란하게 배열해 놓는 것은 감독의 책임. 김재박은 정규시즌 132게임과 한국시리즈 7차전을 정교하게 날줄과 씨줄로 짜서 시리즈 우승이라는 멋진 직조물을 만들었다.

김재박은 98년 우승후 다음해 포스트시즌에 탈락하면서 김재박 야구는 한순간 반짝이었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그러나 심기일전 올해 '4강전력 턱걸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깨고 전례없이 탄탄한 투-타 짜임새로 우승 반지를 꼈다. 2001시즌의 김재박야구는 어떤 모양새를 갖출까. 김재박의 우승 인터뷰를 회고해보면 답이 얼추 나오지 않을까 한다. "야구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점수가 날때 내야 한다. 상대의 기를 죽일 때는 확실히 해야 지금처럼 어려운 경기가 안 나온다. 야구는 드라마가 아니다. 자라면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안전하게 이길수 있는 야구를 했다." <주간동아 260호 11월22일자>

정리=최용석 동아닷컴기자/ duck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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