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들도 못믿는 수사라면

  • 입력 2000년 9월 15일 18시 31분


한빛은행 불법 대출 사건은 ‘단순 사기극’이라고 결론을 내린 서울지검의 수사결과에 대해 일부 검사들이 “우리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엊그제 열린 서울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동료 검사가 맡았던 수사에 대해, 그 동료 앞에서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과 다름없다.

사실 검찰이 추석연휴를 앞두고 서둘러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것부터가 미심쩍었다. 검찰 수뇌부는 시간이 지나면 사건이 웬만큼 잊혀질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연휴기간 중 오히려 의혹이 증폭됐고 민심도 사나워졌다.

특히 검찰이 사건 내용과 주요 관련자가 같은데도 한빛은행 사건과 신용보증기금 사건은 별개라며 처음부터 보증기금 사건에 대해선 비켜가기로 일관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보증기금 사건의 경우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가 두차례나 기자들을 만나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의 ‘압력’을 증언했다. 또 이씨의 출신대학 동창회 관계자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차례나 박장관과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이 지난해 5월 이미 ‘박장관 압력설’을 전해들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물론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관련자의 증언이 상당히 구체적인 점으로 미루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최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도 박장관 문제가 거론됐고, 민주당 초재선 의원 13명이 어제 특검제 수용을 주장한 것은 뒤늦게나마 이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 의원들도 지적했듯이 국회법 날치기, 선거부정 축소의혹, 의약분업 파동, 유가인상 등 ‘사나운 민심’의 한가운데 한빛은행과 보증기금 사건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여전히 이 문제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김대통령은 엊그제 “박장관이 의심받고 있는 것은 알지만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이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아예 수사도 하지 않았는데 증거가 없다고 단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제 특검제를 채택하든지, 아니면 대검 중수부에서 전면 재수사를 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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