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영화와 소설의 거리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49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한국영화의 밝은 현주소를 읽게 한다. 거친 단순화(單純化)일지 모르지만, 근래 한국영화는 크게 두 개의 지향(指向)을 보여왔다. 하나는 유럽예술영화의 영상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 영화의 엔터테인먼트(혹은 오락성)였다. 그 대표적인 성취가 ‘박하사탕’과 ‘쉬리’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공동경비구역 JSA’는 불안한 대로 그 두가지 지향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삼엄한 분단의 현실과 그걸 바탕으로 자라난 남북 젊은이의 상이한 행동양식은 진지한 예술의 규격을 확보한 느낌이다. 또 전쟁영화의 볼거리와 희비극성의 적절한 교차, 그리고 과장된 비극적 결말은 할리우드 활극(活劇)의 오락성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원작소설인 박상연의 ‘DMZ’를 면밀하게 읽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묘한 감회를 준다. 영화와 소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 혹은 영상매체와 문학의 위상정립이란 미묘한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밝히자면 소설 ‘DMZ’는 제 20회 ‘오늘의 작가상’에서 최종심까지 올라왔다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다수의견에 밀린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성이 아까워 단행본으로 펴내게 하였는데, 의심받던 리얼리티는 이듬해 ‘김훈중위의 자살사건’이 터지고야 겨우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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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 원작에선 어떻게 묘사했나?

이러한 원작소설과 영화 사이의 거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주제의 변질이다. 원작의 주제는 정치 사회적 의식의 조건형성이란 심리학적인 것이었다. 종소리만 듣고도 위액을 분비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간의 의식도 반복하여 어떤 조건을 형성해주면 거기에 따라 반사하게 된다. 지난 시대의 엄혹한 반공교육은 남한 젊은이들의 의식에 일종의 조건형성이 되어 유사한 자극이 오면 반사하게 되는데, 남북 두 젊은이의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 그토록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조건반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비극적 결말의 계기가 북한군관의 예기치 않은 초소순찰로 대치되었다. 의식 내부의 은밀한 진행을 영상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어렵게 영상으로 담아낸다 해도 대중적인 감동을 이끌어낼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관찰자를 남자에서 여자(소피소령·이영애 분)로 바꾼 것도 영화와 소설의 거리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소설에서는 관찰자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눈으로 들어오는 여성미가 엄청난 느낌의 차이를 주었다. 원작의 설정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는, 잘된 선택으로 보인다.

서로 떨어진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영화쪽을 우선시켜 아쉬운 점도 많다. 그중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성격형성과정에서 내면적인 부분이 지나치게 생략되거나 아예 무시돼버린 점이 특히 그렇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형을 죽이고 제3국행 배를 타야 했던 반공포로(관찰자의 아버지)를 따로이 영상으로 보여주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대화로라도 요약해 주었더라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영화에서처럼 느닷없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만화와 서부영화, 그리고 장난감 권총이 배경이 되는 주인공(이수혁 병장)의 의식내면이나, 북한 테러리즘의 흉기처럼 길러져 세계 각지의 특수전 교관으로 떠돈 오경필중사의 의식내면도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경비구역 JSA’가 한국영화의 밝은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문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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