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증시폭락 배경 집중해부

  • 입력 2000년 8월 31일 11시 45분


증시가 극도의 부진으로빠져들고 있다. 투자자들은 마치 둔기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투매에 나서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오전 한때 690선마저 붕괴되기도 했으며 주가지수선물 9월물도 3포인트 이상 떨어지며 88선으로 예상됐던 지지선을 거침없이 쓰러뜨렸다.

증시 전문가들은 증시의 심각한 탈진현상을 △수급불안 △매수주체의 실종 △주요 지지선 붕괴 △삼성전자의 부진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더 이상 지수를 받쳐줄 뚜렷한 지지선이 없는 상황이어서 주가의 추가하락이 불가피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수급불안

증시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있는 가장 주요 원인은 심각한 수급 불균형이다. 사람으로 치면 심각한 영양부족과 빈혈상태에 빠져있는 셈이다.

증시자금 동향을 살펴보면 현재 증시가 앓고 있는 빈혈증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투신사의 주식형펀드 수탁고는 작년 10월 55조원규모에서 최근 27조원대로 급감했다.50%에 육박하는 투자자금이 시장을 이탈, 부동(浮動)자금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다.이는 가뜩이나 시장으로 불신을 사며 외면을 당하고 있는 투신권 등 기관 투자가들의 역할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준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12월에 만기 돌아오는 뮤추얼펀드 규모도 3조원에 달한다. 현재 뮤추얼펀드의 주식편입 비율이 5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오는 10월 중순부터는 1조5000억원 규모의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급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고객예탁금 역시 지난 29일 현재 8조3246억원으로 올 최고 수준이었던 지난 3월10일의 12조4600억원에 비해 33.2%나 줄어들었다. 최고치에 비해 하루에 평균 1%씩 감소하는 추세다.

단기적으로는 "마녀가 춤을 춘다" 다음달 14일의 '더블위칭데이(선물·옵션 만기일)'를 앞두고 매수차익 거래잔고가 8000억원으로 줄어들지 않는 것도 주가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더블위칭데이를 앞두고 외국인과 기관의 지수 관련 대형주의 "비중축소(underweight)"를 초래, 관련 종목의 매도공세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매매주체가 없다.

"판은 벌어졌지만 출연 배우가 없다"

현재의 증시상황을 두고 증권가에 떠도는 말이다. 촬영기는 돌아가고 감독은 이미 "레디 고"를 외쳤건만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촬영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형국이다.

개인들은 시장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관리종목이나 저가주 매매에 골몰, 지수를 떠받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투신권 등 기관 투자가 역시 봇물터지 듯 쏟아져 나오는 환매요청을 견디지 못한 채 매도공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수가 크게 하락할 경우 저점매수에만 치중하다보니 자금 및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대우사태 이후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기관은 올들어 지난 30일까지 총 7조2807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특히 작년 10월 이후로 환산하면 순매도 규모는 무려 10조9211억원으로 불어난다.

◆외국인 한국증시 등졌는가

한국증시에 회의를 품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늘어나는 것은 향후 증시전망을 더욱 우울케하는 대목이다.전일 외국인들은 127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이는 허수다. 현대중공업이 750만주의 현대전자 주식을 장마감후 CSFB증권에 2만2150원에 매각한 1663억원을 빼면 실제로는 393억원 어치를 순매도한 것이다. 이는 외국인들이 순매수 16일만에 순매도로 매매패턴을 바꿨음을 의미한다.

외국인들은 31일에도 오전 10시45분 현재 1918억원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 전일의 매매패턴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입증해주고 있다.

외국인들의 순매수 매매패턴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은 수분전부터 관측됐었다.MSCI의 한국증시 편입비중이 낮아진데다, 인터내셔널 펀드의 자금이탈로 미국계 자금의 제3시장 유입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들은 작년 10월 이후 약 16조1589억원의 순매수를 기록,아직 본격적으로 "셀 코리아(sell Korea)"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들어올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투신 김성수 수석 펀드매니저는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증시를 떠날 준비를 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투자패턴이 기본적으로 바이&홀드에서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면서 "반도체 주를 집중매도하고 있는 것도 미국 반도체업체가 한국의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등에 특허소송을 제기한것과 연관성이 높다"고 말했다.

◆무기력한 삼성전자

한국증시의 간판주자인 삼성전자 주가가 외국인의 매도공세를 견뎌내지 못한 채 다시 30만원대 이하로 주저앉은 것 역시 지수의 추가하락을 예상케하는 대목이다.이날 삼성전자는 쟈딘 플레밍 ABN암로 모건스탠리 등의 창구에서 나오는 매도공세에 오전 11시 현재 전날보다 2만3000원이나 빠진 27만8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내다파는 것은 더블위칭데이를 앞두고 지수 관련 대형주들에 대해 전략적으로 '비중축소(underweight)'에 나선 탓이 크다.

또한 반도체 D램 가격이 줄 곳 하락하며 최근 2개월만에 최저치로 하락하며, 아시아 주요에서 반도체 종목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것도 삼성전자 주가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같은 전망을 반영, UBS워버그는 최근 삼성전자에 대해 "적극매수(strong buy)"에서 "매수(buy)"로 투자의견을 한 단계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국내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이 역시 지수 상승의 강력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의 전용배 부장은 "국내 기관의 투자 여력이 약화된 가운데 유일한 매수세력이었던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매도에 나섬에 따라 주가지수가 한단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들의 삼성전자에 대한 대량 매도가 '셀 코리아' 측면에서 나오는 것인 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일단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여 매수 주체가 없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주요 지지선 붕괴

종합주가지수가 지난 28일과 29일 각각 플러스 2.01포인트와 마이너스 0.25포인트를 기록하며 지수 20일 이동평균선이 포진해 있는 721선을 지켜낼 때만해도 증시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증시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30일 외국인들이 사실상 순매도를 기록하며 지수를 12.63포인트 끌어내리며 20일 이동선을 깨뜨리자 지수의 추가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선물시장의 현물시장 지배력이 확대되는 등 불안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선물시장에서 장중 내내 백워데이션이 발생하며 프로그램 매도물량을 대량 쏟아내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각 증권사의 선물 담당자들은 이날 최근 월물인 9월물이 지수 88선을 지켜낼 것으로 예측했으나 외국인들의 매도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20일 이동선이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증시 전문가들은 강력한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지지선이 일단 무너지면 이내 강력한 저항선으로 돌변하는 지수 특성상 지수의 기술적인 반등은 가능하지만 추세적인 상승은 당분간 힘겨울 것으로 관측하는 경향이 강하다.

LG투자증권의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20일 이동선이 보름만에 붕괴돼, 단기 BOX권 조정 신호가 들어왔다"며서 "특히 7월 중순 이후 하락세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되려하는 시점에서 지수가

급락하는 바람에 이동평균선은 다시 횡보나 약세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대책은 뭔가

증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체력비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이른바 보약론이다.체력을 강화한 후 한약을 먹는 것이 더 약발이 잘 받듯이 당장의 대책은 시장체력을 보강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들은 가장 먼저 추선연휴를 앞두고 시장에 약 5조원의 자금이 방출되는 데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일단 증시의 체력을 보강시키기 위해서는 시중자금이 증시로 유입돼야 '악성 빈혈'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시중금리가 최저 상태로 낮아진 데에도 한가닥 희망을 거는 눈치다.

다음에는 증시에 보약을 투여할 차례다. 우선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속도가 완만하다면 우려할 정도의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신경제연구소의 김영익 경제조사실장은 장기적으로는 "경기불안에 불확실성을 빨리 해소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및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라면서 "이를 통해 국제 경쟁력이 있는 기업과 금융기관을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약새를 보이는 반도체 가격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현재의 엔고(高) 추세가 이어지며 △유가 상승세가 둔화된다면 9월 이후에는 증시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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