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불안한 印尼정국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46분


1만4000개의 섬과 240개의 종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 인도네시아가 3년째 유혈 분쟁과 정치적 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통치가 무너지면서 경제 안정과 민주화 요구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은 집권 10여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7일 개막될 국민협의회(MPR·국회) 총회는 그의 진퇴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전망. 야당이 그의 탄핵을 거론하면서 와히드 지지파와 반대파는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동남아의 안정에 긴요한 인도네시아의 정국 안정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일까.

▽분리독립운동〓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주에 부분적인 자치를 허용하다 천연가스 매장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정부군이 반체제인사를 투옥, 학살하자 대규모 시위와 폭동이 이어져 97년까지 희생된 반체제인사와 주민만 4만명에 이를 정도. 잔악 행위가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되자 정부는 지난해 진상조사를 거쳐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시늉만 했다.

뉴기니섬의 이리안자야는 당초 네덜란드 식민지였으나 인도네시아가 69년 무력 합병하면서 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같은 섬에 있으며 인종적, 문화적으로 같은 파푸아뉴기니가 75년 분리 독립하자 이리안자야 주민들은 무장투쟁에 나섰다.

98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로 탄압이 느슨해지자 두 지역 주민들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국민협의회는 아체와 이리안자야의 자치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최근 두 지역의 독립요구는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종교 인종적 유혈분쟁〓지난달 발생한 말루쿠섬에서의 대량학살은 세계가 전율하게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기독교계와 이슬람계의 갈등으로 약탈과 고문, 살육이 이어지면서 희생된 주민은 6000명. 80년대 말까지 기독교계가 지배세력을 이뤘으나 정부가 인근 술라웨시섬으로부터 이슬람계 주민을 이주시킨 것이 대형참사를 부른 원인.

보르네오 북부에 위치한 삼바스 지역도 인종과 종교분쟁의 화약고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석유와 삼림개발을 이유로 기독교계인 다야크족 근거지에 이슬람계 마두르족을 이주시키면서 종족간 피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내정분열〓유혈탄압의 책임자 처벌과 비리척결을 내건 야당의 공세는 와히드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와히드가 지난달 야당인사 15명을 구속수사할 것을 지시하자 제 1, 2당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PDIP) 및 골카르당 등 야당은 국회를 소집, 7월20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소환했다. 그러나 와히드는 구속수사의 철회와 야당소속 경제장관의 해임 배경을 설명하라는 야당요구를 거부, 정국긴장을 고조시켰다.

아크바르 탄중 국회의장(골카르당 당수)은 “통치권 일부를 메가와티 부통령(PDIP 당수)에게 이양해야 한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메가와티 부통령도 최근 와히드 지지대회에 불참하는 등 와히드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상황.

지난해 10월 와히드의 취임이후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경제와 위란토 전 군사령관의 축출에 불만을 품은 군부의 반발도 와히드 대통령에게는 큰 압박 요인. 내정불안으로 루피아화(貨)는 지난달 21개월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9500선 이하로 추락했다.

여기에 와히드와 자신의 전직 안마사가 각각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으로부터 200만달러(약 22억원)와 국영기업으로부터 400만달러(약 44억원)를 가로챈 비리마저 불거져 내연하는 정국에 기름을 부었다.

▽와히드측의 대응과 전망〓와히드는 골카르당 창당자인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처벌함으로써 ‘인도네시아판 역사 바로세우기’를 강행할 태세다. 검찰이 5억7000만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수하르토에게 종신형을 구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

그는 또 MPR 총회 직후 단행할 개각에서 군 출신 인사를 중용, 당근을 제공하는 유화책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파별로 안배하던 기존의 나눠먹기식 인사를 하지 않고 테크노크라트를 대거 기용할 계획. 경제 안정과 군부의 지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분리독립운동과 종교적 갈등에는 속수무책인 상황. ‘제2의 동티모르’가 탄생하면 다인종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분열로 치닫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경론만 난무하고 있다. 종교갈등 역시 집권세력 내부의 이해관계가 달라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도네시아의 정국 불안은 종교적, 인종적인 갈등과 경제적인 이유까지 복잡하게 맞물려 자칫 유혈충돌과 와히드의 퇴진 등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백경학·권기태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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