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개도 '감정'이 있다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3분


원숭이의 뇌(홍콩), 양의 눈알(아라비아), 개구리의 다리(프랑스), 개고기(한국). 별난 기호식품들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워 보신탕 장사가 호황을 누린다는 소식이다.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일은 다반사다. 동물은 도살장과 실험실에서 잔혹하게 죽어간다. 생쥐 새 토끼 따위의 동물실험은 의약품 화장품 농약 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돼지 염소 양 등 가축은 유전자 조작으로 식품뿐만 아니라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의 생산공장으로 활용된다.

유전공학으로 동물의 형질을 개조하고 의약실험으로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동물권(animal right) 운동가들의 극렬한 항의를 받는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유럽에서 비롯됐다. 1780년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동물이 사람과 똑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으므로 사람처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1822년 영국 의회는 최초의 동물복지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계기로 말 당나귀 양을 구타하거나 학대하는 행위는 범죄가 됐다. 최고 형량은 2년 징역. 1876년에는 영국에서 동물학대 방지법이 제정됐다. 반드시 마취된 상태에서 동물을 실험하도록 규제했다.

▼75년 싱어 '동물해방론' 계기▼

20세기 들어 대중의 동물권 운동은 1975년 호주의 철학자인 피터 싱어가 펴낸 ‘동물 해방론’이 계기가 돼 불이 붙는다. 싱어는 대부분의 인류가 종족주의(speciesism)의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싱어가 만든 용어인 종족주의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를 연상시킨다. 인종이나 성을 근거로 해서 흑인이나 여성에게 평등한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부당한 것처럼, 동물이 사람과 같은 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물의 가치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동물보호에 나선 가장 극적인 사례는 스웨덴이다. 1988년 스웨덴 의회는 가축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사람에게는 가축을 잡아먹을 권리를, 가축에게는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안이었다. 가령 암소에게는 풀을 마음껏 뜯어먹을 기회를 부여하고 돼지나 병아리의 우리를 철폐하게 했다. 도살할 때는 동물에게 고통을 덜 주는 방법을 강구하도록 규정했다.

1998년 11월 마침내 영국의 화장품회사들은 세계 최초로 동물실험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선언했다. 동물실험의 실상을 과학자들만 알고 있었으나 동물보호단체들이 잔혹한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폭로해 대중의 동물실험 반대운동이 극렬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유럽공동체도 2000년부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은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동물권리' 사회적 합의 어려워▼

대다수 사람들이 동물은 사람보다 열등하며 사람처럼 감정을 느낄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는 현실에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집에서 개 고양이 앵무새와 같은 애완동물을 길러 본 사람들은 동물이 사랑을 하고 고통과 불행을 느낄 수 있으며, 분노 공포 고독감 실망과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동물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례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으면 목구멍에서 야릇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사람에게 비벼댄다. 지저귀는 새를 보면 우리는 그 새가 행복한 것으로 생각한다. 동물원에서 꼼짝없이 앉아 있기만 하는 오랑우탄의 쓸쓸하고 슬픈 표정을 보면 사람들은 오랑우탄이 절망감에 빠져 있거나 혹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고 느낀다. 아프리카의 코끼리 보호소에서는 밤마다 새끼코끼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개는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기쁨을 표시한다.

최근 헝가리 학자들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인류와 개는 13만5000년 전부터 더불어 생활하며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개가 슬퍼하는 사람의 정서상태를 감지하거나, 사람 또는 다른 개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눈치채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개들이 감정을 느낄 줄 안다는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저는 보신탕을 여러 그릇 해치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올시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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