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동감 특집]'접속'보다는 덜 세련되지만 더 따뜻한 로맨스

  • 입력 2000년 6월 14일 10시 44분


2000년에 사는 남자가 1979년에 사는 여자와 교신했다면 그걸 믿을 것인가.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서로 의심하듯 누군가 한쪽이 사기를 치거나 미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영화 <동감>은 다른 시간대의 두 남녀가 개기월식이 일어나던 밤 우연히 교신한다는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먼저 받아들인 2000년의 남자 인(유지태)에게 1979년의 여자 소은(김하늘)은 묻는다. "그럼 이젠 제가 믿어야 할 차례인가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또 있다. 사랑의 '감정'인 것이다. 첫사랑에 설레는 소은이 단짝 선미(김민주)에게 "이상해. 숨이 탁 막혀. 심장이 터질 것 같구, 몸의 어느 한쪽이 움찔거리는 거야"라고 고백할 때 "바보, 호르몬 때문인데…"라고 할 관객은 거의 없다.

저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은의 첫사랑 동희(박용우)가 애인처럼 보이게 팔짱을 끼자고 제안하자 소은은 "진짜 애인 사이는 팔짱을 안 껴도 그렇게 보일 걸요"라고 말한다. '동감'이다. 한 개체 안의 감정이나 개체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 모두 과학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도 현실적인 타당성을 갖는다.

<동감>은 비현실적인 로맨스지만 <은행나무 침대>처럼 SF 판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000년의 시간을 넘어선 운명적인 사랑에 비해 겨우 21년의 시간을 건너뛴 동갑내기의 교감은 더 믿음직한 이야기라서? 아니다.

그들 사이로 운명이 비켜갔거나 그들이 운명을 비켜갔기 때문이다. 소은과 동희가 결혼했다면 동희와 선미의 아들인 인은 태어날 수 없을 테지만 소은은 인으로부터 미래를 알고는 시간을 거역하지 않는다. 어쩌면 엄마가 될 뻔한, 혹은 아빠의 옛사랑인 소은을 만나러 간 인은 애절한 마음에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함으로써 <백 투 더 퓨쳐>의 마티처럼 다른 차원의 시간 때문에 꼬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이들은 나선형적인 시간을 순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우스같이 생긴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땠다 하며 1979년과 2000년에 몇 주간 쓴 육성일기로 공감한다. 소은과 인은 편지보다는 신식이고 PC통신이나 이 메일 보다는 구식인 무선통신으로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만나되, 만나지 않은 채 결말을 낸다.

이 영화가 <접속>에 비해 덜 세련되고 동시에 덜 차가운 로맨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교감이 글자가 아닌 목소리를 통해 직접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카타르시스의 강도가 높지 않은 것은 20살 대학생인 이들에게 영화가 무리한 인연을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감>에서 김하늘과 유지태의 풋풋한 용모는 원숙한 연기력 못지않게 배우로서의 장점이다. 영화의 초반 30분 가량 목소리만 등장하는 유지태는 가히 한석규의 발성에 가까운 호소력을 얻는다. 두 명이 만드는 그림은 단 한 장면 뿐인데도 두 배우의 어울림은 영화 내내 함께 그림을 만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유치한 듯 장난스러운 대사도 산뜻한 영화를 한층 발랄하게 한다. 그러나 1979년의 사랑인 소은과 동희의 모습은 박용우의 어엿한 연기로 긴장감을 잃지 않는 반면, 2000년의 사랑인 인과 현지(하지원)의 모습은 지나치게 퉁명스럽고 징징거린다.

12세 관람가의 팬시 영화 <동감>의 유신말기 묘사는 물론 민망한 수준이다. 아름다운 교정에 퍼지는 최루탄은 독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그 시절의 꽃 향기 같을 지경이다. 그러나 더 민망한 점은 협찬을 받은 현재의 소품과 의상이 1979년에 태연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기와 연출은 시간차를 강조하려 애쓰는데 미술은 이 차이를 무시한다. 그게 눈에 자꾸 밟혔다.

[한승희(lisaha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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