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속 의학]말러의 가곡 '죽은 자식을 그리는 노래'

  • 입력 2000년 5월 23일 18시 59분


구스타프 말러의 가곡 ‘죽은 자식을 그리는 노래’는 분위기가 제목 그대로 비장하다. 특히 카트린 페리어의 목소리로 듣는 ‘노래’는 그 비장함이 오히려 밝게 빛날 정도이다.

사실 자식을 죽음에 넘겨준 부모의 슬픔보다 더 한 것이 있을까? 말러가 이 곡을 만들 때엔 자신의 딸이 한참 까불거리며 건강했을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한 시기에 슬픈 내용의 시에 곡을 붙여서인지 그의 딸이 노래내용처럼 급사를 하고, 본인도 심장병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당분간 이 곡에 손을 대지 못한다. 아마 입방정을 떨어 불행을 불러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그는 죽음을 떠올렸을까?

말러는 14형제의 둘째로 태어났고 형제 가운데 9명의 죽음을 어린 시절에 경험한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의 일반적 의미를 10세 전후에 깨닫는데, 그는 반복적으로 형제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경험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간직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어릴 때의 반복되는 정신적 외상은 뇌의 발달에 영향을 주어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증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외상을 극복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수단 중 하나가 ‘반복 강박’이다. 두려움의 대상과 관련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집착 행동이 반복 강박이다.

말러는 그의 9번째 교향곡에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번호와 같은 ‘9번’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심했다. 이를 피해보려는 노력과 비례해서 그의 의식은 죽음이라는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느끼고 또한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기쁨이 넘치는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그는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죽음을 느끼고 죽음과 연관된 어떤 행위-그에겐 작곡-를 반복한다.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은 일생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타고난 유전자의 발현에까지 영향을 준다. 따라서 자녀의 미래를 위한 지원은 고액 과외보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상처받고 있지는 않나 살피는 따뜻한 눈길일 것이다.

전성일(인제대 상계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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