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대우자금팀이 현대에 보내는 충고

  • 입력 2000년 4월 30일 19시 37분


“현대와 대우는 유동성 면에서는 다르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이 현대에 대해 근본적인 신뢰문제를 제기한 것은 대우때 보다 더 심각하다.”

그룹몰락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대우그룹의 자금팀 관계자들이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현대에 대해 보내는 충고다.

유동성 면에서 보면 대우가 부도날 당시 그룹안에 현금이 들어오는 계열사가 거의 없었고 위기가 감지된 초기에도 회사측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반면 현대에는 전자 중공업 자동차 등 현금이 꾸준히 들어오는 계열사들이 있다. 또 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에서 부채비율을 낮추어 왔기 때문에 현대는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던 대우와 자금면에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대우 관계자들의 분석.

대우 자금팀 관계자들은 ‘현대사태’를 현대투신 부실문제와 현대그룹 신뢰성위기로 나누어서 본다.

㈜대우 자금팀 관계자는 “이번 주가폭락을 현대투신 부실문제만으로 보는 것은 안이한 인식”이라며 “정부와 현대는 하루빨리 현대투신 부실문제를 정리해야 하지만 현대는투자자, 특히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털어내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우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사재출연이라는 정부의 해법이 논리보다 정서를 중요시하는 한국식 해법이기는 하지만 일단 정부가 사기업에 돈을 빌려주려면 명분이 필요한만큼 정부의 지원에 화답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현대는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자구노력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말에 현대계열사 주가가 다소 반등한 것은 정부가 지원을 하겠다는 소식을 접한 투자자들이 “잠시 투신문제를 지켜보자”며 멈칫했을 뿐 다시 시간을 끌 때는 제2의 주가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대우그룹 국제금융팀 관계자는 “더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대그룹 자체에 대해 갖고있는 불신감”이라고 지적한다.

외국인들은 현대가 지난 2년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다고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게 대우관계자들의 지적. LG전자와 기아자동차 한남투신 등 잇따른 기업인수, 적자인줄 알면서도 계속되는 대북투자 등 확대경영을 계속했을 뿐 ‘알짜배기 기업’까지 팔아서라도 부채를 줄이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외국인들은 또 현대가 제시하는 각종 재무제표나 IR(기업투자설명)자료도 신뢰하지 않고 있다. 현대경영권 분쟁으로 ‘황제경영’이 여전하며 내분이 완전히 진정되지도 않았다는 인식도 현대로서는 부담이다.

㈜대우 국제금융팀에 근무하다 최근 한 벤처기업 재무책임자로 옮긴 L씨는 “외국 금융기관은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빼앗아가고 햇빛이 내리 쬘 때는 우산을 쓰도록 강요할 만큼 기업 위기상황에 냉정하다”며 “현대가 신뢰를 회복, 악성루머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대는 지난해말 해외 로드쇼에서 ‘진행경과를 내년 6월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최근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로드쇼를 취소한 걸로 알고 있다”며 “상황이 좋던 나쁘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해외투자자들의 마음을 살수 있는 기초를 무시했다가 몰락한 대우의 전철을 현대가 밟지 않기를 충고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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