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

  • 입력 2000년 4월 28일 19시 34분


난해한 추상화를 바라보며 “그 그림 참 좋다”고 하면 “어디가 그리 좋으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좋다” 할 때 “왜 그 음악이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19세기 독일의 생물리학자 헤르만 헬름홀츠도 일찍이 인간의 본질적이고 선험적인 감각에 음악보다 더 밀접한 예술은 없다고 단언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서양음악, 즉 유럽 예술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배달민족 특유의 음악적 변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음악학자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따르면 인간은 살면서 제가끔 다른 색을 띤 경험의 안경을 끼게 된다. 음악의 세계에도 귀를 위한 안경이 있다. 너무도 오랫동안 서양음악의 안경을 끼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라는 이 작은 책이 이젠 안경을 벗을 때라고 일깨워준다.

인류학자이자 종족음악학자였던 존 블래킹(1928∼1990)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다는 서양식 관념의 허구를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음악 신동이란 대개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가 아니라 소리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그저 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아이일 뿐이다. 소수가 더 음악적이 되기 위해 다수가 비음악적이도록 강요하는 서양문화권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인류집단에서 음악이란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공동체문화다. 안경을 벗고 들으면 서양음악도 결국 하나의 종족음악에 지나지 않는다.

다윈은 인류의 조상들이 언어를 사용하여 사랑을 고백할 수 있기 전까지는 음의 높낮이와 리듬으로 서로를 유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더 화려하고 매력적인 노래를 부르는 수컷이 암컷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들의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블래킹도 음악이란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경험에 의해 ‘인간적으로 조직된 소리’이기 때문에 대뇌작용 등을 통한 인간본성의 분석과 음악의 창조자인 인류 전체의 활동에 대한 관찰이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이 얼마나 음악적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자인 채현경교수(울산대)는 “모든 음악은 다 그 사회와 문화 안에서 제각기 나름대로의 기능을 갖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그 구성원들과 교감하여 그들을 반영하기 때문에 인간사회에 의미를 지니며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음악성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인 듯 싶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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