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미친 키스'/현대인 갈망 소외 코믹터치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나는 너와 접촉할 때만 너를 느껴. 그러니까 키스할 수 밖에 없다구!”

육체적 접촉으로 소외감에서 벗어나려는 남자, 상대방의 집착이 부담스러워 떠나려는 여자. 마치 구순기(口脣期)의 아이처럼 간절히 키스와 접촉을 열망하지만 이들은 결코 소통하지 못한다. 조광화 작, 연출의 ‘미친 키스’는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를 ‘등바라기’ 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신적 궁핍을 파헤친 연극.

1998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우리시대의 연극’으로 올려져 화제를 모았던 ‘미친 키스’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유시어터로 옮겨져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흥신소에서 일하는 장정(이남희 분)은 사랑의 상실감에 허덕이며 열정적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변심한 애인 신희와 창녀로 나선 여동생을 스토커처럼 좇아다니며 괴롭히는 일. 장정과 신희, 여동생과 대학교수, 대학교수 부인과 장정 등 등장인물들은 얽히고 설키면서 서로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모두들 다 떠난 뒤 장정이 “내가 나를 키스한다”고 울부짖는 것처럼 그 욕망은 모두 자신을 향한 것으로 밝혀진다. 진정한 만남이란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

무대에는 수많은 키스와 애무가 난무하지만,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오히려 애잔함이 가득하다. “창문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던 나를 떠나? 누가 그렇게 널 기다려주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무릎 꿇고 앉아 구두끈 매주던 나를 떠나? 참 좋겠다! 눈 오던 새벽 운동장에서 껴안고 뒹굴던 나를 떠나? 부럽지, 그치?….”

‘영화나 CF같은 이미지로 가득찬 연극’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막의 닫음없이 극을 스피디하게 전개시키면서 무거운 주제를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조광화의 솜씨는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베개 속에 들어있던 닭털을 눈처럼 날리며 허무하게 춤 추는 주인공의 모습에선 눈물 흘리는 관객도 많다. 신들린 듯 열연하는 이남희는 잠시라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깨질 듯 위험하면서도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혜원(여동생 역)도 이 연극을 통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4월23일까지. 평일 8시, 토일 4시 7시. 1만5000∼2만원. 02-3444-0651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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