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복마전']시공사 본계약후 수십억 부담 요구

  • 입력 2000년 3월 5일 21시 15분


재건축 사업에서 조합원은 봉인가.

서울 5개 저밀도 지구와 개포주공아파트 등 서울에만 1000여곳에서 재건축 사업이 진행 되고 있지만 시공사의 횡포와 조합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재건축 시공사들은 본계약 이후 갖가지 명목으로 수십억∼수백억원의 추가정산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부 조합집행부는 시공사로부터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고 각종 횡포를 묵인해주는 실정이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사인(私人)간의 계약’이라며 수수방관하고 있어 재건축 사업 전체가 공멸의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구당 9000만원 요구▼

▽시공사의 횡포 ‘추가정산금’〓추가정산금 없이 재건축 사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공사의 추가부담 요구는 관행화돼 있다. 물가인상, 공사비 증가 등의 명목으로 시공사는 통상 30억∼200억원 가량을 조합측에 요구한다.

본보 취재팀이 현재 재건축이 진행중인 서울시내 16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에서 시공사가 가구당 2000만원 이상의 추가정산금을 챙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5000만원 이상을 받은 곳도 4곳이나 됐으며 무려 9000만원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추가정산금은 근거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 토목공사 비용을 부풀려 추가정산금을 수십억원씩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며 발생하지도 않은 이주비 이자 인상을 근거로 무려 180억원을 요구한 기업도 있다.

조합측이 시공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공사비 명세가 공개되지 않아 비용인상 여부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 조합측이 추가정산을 거부하면 시공사는 공사 자체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가부담을 하는 실정이다.

▼공사발주권 받는 경우도▼

▽끊이지 않는 조합비리〓조합비리는 추가정산금을 많이 받아내려는 시공사의 음모와 조합운영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는 집행부의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발생한다.

일부 시공사는 자신들의 부당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사업추진위원회 구성단계에서부터 각종 이권을 약속하며 집행부를 ‘자기 편’으로 만든다. 본계약이 끝나면 시공사는 토목공사 과정에서 만든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집행부에 건넨다. 심지어는 부엌가구 새시 등의 발주권을 넘겨주는 경우도 있다.

시공사가 ‘조합 구워삶기’에 드는 비용은 사업규모에 따라 10억∼40억원 가량. 그러나 조합과 시공사가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조합집행부가 시공사 편을 들기 때문에 투자효과는 거두는 셈이다.

S건설 관계자는 “조합집행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사업추진 자체가 어렵다”며 “시공사가 뇌물로 사용하는 돈은 10배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행정당국 "나몰라라"▼

▽무책임한 행정당국〓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교통부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건축 관련 분쟁을 조정하도록 했지만 대부분 ‘사인간의 분쟁’이라며 외면하기 일쑤.

J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은 “건설교통부 구청 등에 수십 차례 부당함을 고발했지만 번번이 외면당했다”며 “정부마저 시공사의 횡포를 모른 척한다면 조합측의 억울한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대순변호사는 “시공사 선정만 끝나면 조합은 사업기간 내내 시공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관련법을 정비해 시공사가 공사비 명세를 공개하도록 하고 조합집행부를 감사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을 만들지 않는 한 잡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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