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새천년]中-日 '아시아 리더' 야심

  • 입력 2000년 2월 16일 23시 04분


《21세기 아시아의 맹주는 중국인가 일본인가 21세기 아시아의 맹주는 중국인가 일본인가. 중국은 13억의 인구와 개혁개방 정책에 힙입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를 대신해 미국과 전략적 경쟁관계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일본은 이미 경제력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국방예산은 세계 3위에 최첨단기술로 무장한 막강한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두 나라가 아시아 정치 경제 군사분야를 둘러사고 벌일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저력은 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 매년 10% 가량의 실질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이같은 저력이 바탕에 있기에 97년 아시아 지역을 덮친 금융위기도 큰 타격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지난 20여년간 동부 연안지역 개발에 치중해 온 중국은 21세기에는 중서부권에 대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판 ‘서부 프론티어 전략’인 셈이다.

또 97년 홍콩, 99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면서 대만 홍콩 마카오를 포함하는 ‘대중화(大中華) 구상’과 전세계 화교들을 아우르는 ‘화교 네트워크’ 논의도 부쩍 힘을 얻고 있다. 중국 내부 경제가 시장경제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낳을 경우 전세계에 퍼져 있는 5000여만명의 화교들이 중국에 대거 투자하는 것은 물론 중국상품의 세계시장 개척에도 첨병이 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화교들이야말로 중국의 세계파워로의 부상에 견인차라는 얘기다.

중국이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위안화 평가절하를 자제한 것도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2015년 무렵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이 11조∼12조달러로 미국에 필적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수량경제기술경제연구소는 여기서 한술 더떠 2020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11조8000억달러를 웃도는 12조500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군사적 위상 강화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데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부실화한 국영기업 처리와 금융부문의 천문학적인 부실 정리, 실업자 문제 등이 가장 큰 과제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1억명의 농민중 최소한 10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시점 현재 실업자가 1억명을 넘는 마당에.

전문가들은 중국이 해마다 최소 5% 이상 성장하지 못하면 이들 실업자를 흡수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사회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로 전망하기도 한다.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의 부진으로 군현대화의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발표한 ‘신국방 4개년 보고서’에서 2015년까지는 군사적으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국가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일본 교토대학의 나카니시 데루마사 교수도 2050년 무렵에야 중국이 미국에 맞설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 일본은 어떤가. 막강한 경제력의 일본은 21세기에 ‘아시아 맹주’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의 초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21세기 일본의 구상’을 발표했다. 이중 대외 위상 문제를 다룬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 부분에는 △미일(美日) 동맹을 중시하고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지향하며 △국제안전보장상의 역할 등 국익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등의 대목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국익 재정의’라는 중립적인 표현이 사실상 ‘세계를 주도하는 일본을 만들자’는 내심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엔화의 기축통화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및 정부개발원조(ODA) 확대 △지역분쟁 해결을 위한 개입 증대 등을 통해 ‘21세기 초강대국화’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전략은 과거 2차대전 전범국의 굴레를 벗고 아시아에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높아지고 있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또 일본이 97년 아시아 각국의 금융위기 때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을 제안,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 영향권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IMF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것을 거울 삼아 아시아 스스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며 AMF 기금의 상당 부분을 제공할 뜻을 비취기도 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전역미사일 방위체제(TMD) 구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것 역시 미국과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역내 위상 강화를 노리는 손짓인 것이다.

일본은 그러나 아시아 각국이 ‘옛 전범국’에 대해 갖고 있는 역사적·정서적 앙금을 해소하는 것이 과제다. 또 군사력 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의 안보동맹’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이 추진해 온 AMF 구상이 미국의 반대에 부딪쳐 구체화되지 못하는 것도 일본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것.

게다가 일본의 군사력 확대에 대해서는 중국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일본의 초강대국 부상에는 ‘중국과의 경쟁’과 ‘미국과의 동맹’관계 재구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중국 경계론이 높아가고 있는 양상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교수는 21세기 국제사회의 권력구조는 ‘유니-멀티(일극-다극)’구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즉 초강대국 미국 아래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EU) 등이 강대국으로 포진할 것이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맹주 다툼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맞설 경쟁국이 당분간 등장하기 힘들 것이란 얘기다.

미국은 정보통신과 유전공학 우주항공 등 첨단과학기술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경제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반해 미국은 현재 사상 최장기인 108개월째 호황을 누리고 있다.

물론 미국 내부에서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계속 추구해 온 세계경찰국가 역할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험한 지역에 미군 파병을 꺼리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지난해 코소보 전쟁 때도 인명피해가 많은 지상전을 피했다. 신고립주의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미국은 앞으로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강력한 추격과 도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21세기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발언권이 20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아시아인의 아시아’로 성큼 한발자국 다가서는 분수령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21세기의 아시아는 당분간 미국-중국 사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중국-일본 사이의 맹주 다툼, 미국-일본 사이의 동맹관계라는 3각틀 속에서 움직여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키워드/'아시아 협력체'▼

세계는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을 추구하면서도 블록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뭉쳤으며 유럽 11개국은 범유럽 통일국가를 위해 통화주권까지 포기하며 유로화를 도입했다.

그런데 동아시아만은 유독 지역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이 주장한 아시아통화기금(AMF)과 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내세운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 창설 등은 번번이 무산됐다. 미국의 반대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는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이로 인해 미국을 경유한 외교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을 배제한 역내 협력이란 불가능했다.

이와 함께 유럽 북미대륙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역사 문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점도 통합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경제적인 수준차이도 너무 커 유로화와 같은 단일통화를 도입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역내 협력 분위기가 강하게 일고 있어 21세기에는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역내 협력관계가 형성될 전망이다.

외교안보연구원 서동만(徐東晩)교수는 “동남아에서는 엔의 국제화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21세기 동아시아에서는 엔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달러화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21세기에 북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동안 북한을 의식해 한국과 일본에 거리를 뒀던 중국이 한일 양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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