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돈과 부패

  • 입력 2000년 1월 5일 20시 00분


▷부정부패와 뇌물이 나쁜 것은 극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반면에 다수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정부 공사에서 뇌물이 오가면 사업자들은 뇌물 액수 이상의 더 큰 이익을 남기려 하므로 공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은 사업자 입장에 서게 되어 공사비를 과다 책정해 주거나 부실 공사를 눈감아주게 된다. 이로 인한 추가비용과 부실공사에 따른 피해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그야말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전형이다.

▷부정부패는 비단 경제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 정의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정직 성실 공정 양심 근면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소중한 가치들이 부정부패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회의 ‘몸’에 해당하는 경제와 ‘마음’에 해당하는 정의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무서운 것이 바로 부정부패요, 뇌물이다.

▷서울시 여러 구청 가운데 공무원의 청렴도가 가장 떨어지는 곳이 강남구로 조사됐다는 소식이다. 이같은 사실은 강남구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부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돈과 부패의 관계를 새삼 머리에 떠올리게 한다. 돈과 부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역시 돈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에는 공무원 부패치도 높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돈과 부패가 과연 분리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법하다. 미국의 기업들이 80년대 침체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서두른 것은 기업윤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기업윤리란 한마디로 뇌물 배제 등 부정부패와의 단절을 꾀하는 것으로 이같은 노력은 미국 기업들이 세계 정상을 탈환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돈과 부패가 따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예이다. 21세기는 ‘윤리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는 어느 나라든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강남구청의 사례는 후진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새 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떨쳐버려야 한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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