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낙환/의료개선은 환자 중심으로

  • 입력 1999년 10월 19일 20시 09분


약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의약분업 논의가 시작됐지만 도리어 환자의 오용이 늘어날 가능성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의사가 처방을 내는 과정에서 약 이름이나 용량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 더구나 종합병원 규모에서는 희귀한 약제를 사용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일반 약국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종합병원의 약사들은 용량이나 투여 방법에 대해 익숙하기 때문에 잘못을 신속히 시정할 수 있다.

의약분업을 통해 불편이 가중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아픈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간 엄마는 진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을 받으면 약국을 찾아야 한다. 모든 약국이 의사가 처방한 약제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약국을 전전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병원에서 주사제를 처방받으면 약국에서 주사제를 산 뒤 다시 병원에 와 주사를 맞는 3중고를 겪어야 한다.

약의 효능 문제도 간단치 않다.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제의 종류가 워낙 방대해 약국에서 그러한 약제를 모두 갖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성분의 약이라 하더라도 제약회사의 제조방법에 따라 약의 효험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현재 종합병원급 이상에서는 의약분업이 아닌 의약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굳이 분업을 통해 불편을 가중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포괄수가제에도 문제는 있다. 포괄수가제는 같은 질병을 가졌을 때 병원에 일정한 액수의 의료비만 지불함으로써 병원이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면 병원에서는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의료까지도 억제하는 일이 벌어지게 돼 있다.

지정진료제(특진제)를 억제하려는 것도 의료의 다양한 속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현행 의료비 지불제도는 수십년 동안 1만건 이상의 위암 수술을 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외과교수와 막 수련(修鍊)을 마친 전문의를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문화재가 만든 도자기와 그 밑에서 배우는 사람의 도자기 값을 같이 매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가 봐도 불합리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모순을 그나마 해결하는 방법이 지정진료제도이다. 환자가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며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특진료를 약간 지불하는 제도야말로 합리적인 방식이다.

물론 시장경제체제를 의료계에 적용하다 보면 의료의 불평등이 문제가 되고 국민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다. 현재 수입이 적은 국민에게는 의료보험제도가 적용돼 이들은 의료비를 전혀 지불하지 않고도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의료보호 환자들이 진료받는 데 유형 무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런 문제는 복지기금을 증대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환자가 편하게 자기가 원하는 의료를 받도록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자유경쟁이야말로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의료인들의 사기와 의욕을 높여 궁극적으로 의료의 질을 높임으로써 국민의 의료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21세기 의료의 핵심은 바로 환자 중심의 의료이다.

백낙환<인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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