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사능 재앙」 남의 일 아니다

  • 입력 1999년 10월 1일 19시 13분


일본 원자력개발 사상 최악의 방사성물질 대량누출사고가 터졌다. 민간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지난달 30일 발생한 이 사고로 50명 안팎이 피폭돼 2명이 중태에 빠지고 주변 10㎞ 이내의 주민 32만명이 피난 또는 옥내대피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일본 과학기술청은 이번 사고가 핵분열반응으로 발생한 일본 최초의 임계(臨界)사고라고 밝혔다. 원자로 내부가 아닌 연료가공용 우라늄 처리과정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한 것과 마찬가지인 핵분열 연쇄반응(임계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통상의 원자력시설에서도 주변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중대사고가 생길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임계사고는 구미(歐美)의 핵무기공장에서 8건, 구소련에서 12건 등 20여건에 이르지만 최근 15년사이 선진국에선 없었다. 그런 가운데 고도의 원자력기술과 안전의식을 자랑해온 일본의 원자력시설에서 임계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어디서든 언젠가는 일어난다’는 경종을 울렸다. 사고가 터지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이날 단행할 예정이던 새 내각구성을 미루고 직접 긴급대책본부장직을 맡고 나섰다. 일본정부가 이 사고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를 말해준다.

이번 사고는 또 일본의 원자력정책에 대한 국제적 경각심을 거듭 불러일으킨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후 ‘평화적 이용’이라는 깃발 아래 원자력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0년까지 대형 원전(原電) 20기를 증설할 예정이며 핵무기를 4000개 이상 만들 수 있는 30t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도 유럽에서 재처리한 플루토늄 400여㎏을 반입했고 앞으로 10년간 80여차례에 걸쳐 추가 반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8월 일본정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국민조차도 68%나 자국의 원자력개발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고 가능성 뿐만 아니라 원자력개발에 대한 정보공개가 불충분하며 관계기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차제에 한반도 내의 원자력 실태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핵연료 제조과정은 일본과 다르지만 연구용 원자로 등에서의 사고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원자력발전 및 핵연료 제조공정의 안전성 여부를 치밀하게 재점검하고 문제의 소지가 조금만 있더라도 안전관리시스템을 철저하게 보완해야 한다. 또 어떠한 뜻밖의 사태에도 신속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위기대응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원자력개발에 대한 국제적 감시와 사고 대응도 무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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