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50년 변혁50년]의식주 변화

  • 입력 1999년 9월 26일 18시 58분


《중국이 10월1일로 정부수립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50년은 중국이 이념과 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아온 실험기간이었다. 특히 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시장경제 건설의 목표 아래 당정군과 국유기업 금융 교육 등 각 분야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그 변혁 50년의 빛과 그림자를 5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라오산양(老三樣)’을 아는가. 80년대까지만도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 사람들이 겨울밤 화롯가에 둘러앉아 즐겨먹었던 배추 무 감자다. 베이징 사람들은 이 세가지를 함께 끓인 ‘라오산양탕(湯)’을 즐겼다.

그러나 그후 중국은 엄청나게 변했다. 베이징의 주요 거리에는 광둥(廣東)식 쓰촨(四川)식 상하이(上海)식 요리점들이 즐비하다. 한국식 일본식 홍콩식 요리점과 맥도널드 켄터키치킨 피자헛 등 서양 패스트푸드점이 다투어 간판을 내걸었다. 베이징시내 음식점만도 3만개에 이른다.

한때 ‘2종3색’으로 통했던 입을거리도 달라졌다. 2종3색이란 인민복과 군복에 회색 흑색 남색이다. 중국인의 옷은 70년대 중반까지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이 화려해지고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베이징 최대 의류시장인 시단(西單)시장을 비롯해 둥단(東單) 훙차오(虹橋) 징쑹(勁松) 등 대규모 의류상가가 곳곳에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불과 50∼100위안(약 6500∼1만300원)에 유럽의 최신 유행을 본뜬 옷을 살 수 있다. 스두(世都) 싸이터(塞特) 옌사(燕莎) 등 고급 백화점에는 해외에서 직수입된 유명브랜드도 내걸려있다.

연간 10% 이상씩 규모가 커지는 의류시장을 둘러싸고 중국산 브랜드 사이의 쟁탈전도 치열하다.

주택사정도 개선됐다. 도시개발과 함께 쓰허위안(四合院·미음자 모양의 전통가옥)과 오래된 단층가옥들이 철거되고 상핀팡(商品房·아파트와 별장 등 신규붕양주택)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람들이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원바오(溫飽)’. 중국정부는 90년대초 전국민이 원바오에 달했다고 밝혔다. 먹고 입는 걱정에서 벗어나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단계가 ‘샤오캉(小康)’. 중국 정부는 12억 인구의 3분의 2가 최근 이 단계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초반이면 모두 이 단계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싱가포르대 동아시아연구소장 황차오환(黃朝翰)교수는 “중국은 그동안 세가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룩했다”고 말한다.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물건이 부족한 국가에서 남아도는 국가로, 빈곤한 폐쇄국가에서 풍요로운 개방국가로 바뀌었다는 것. 이 모든 변화가 중국 정부수립 50년, 특히 개혁개방 20년이 이뤄낸 성과다.

중국 공산정권 수립이 선포된 것은 49년 10월1일. 그러나 중국은 그후 약 30년을 내부투쟁으로 허송했다. 50년대의 반우파투쟁과 대약진운동, 66년에 시작된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 그것이다.

그러나 78년 공산당 11기 중앙위 3차전체회의(3중전회)로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다. 4인방과 화궈펑(華國鋒)을 밀어낸 덩샤오핑(鄧小平)은 소모적인 이념투쟁에 종지부를 찍고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계획경제에 시장경제를 접목했다. 그후 20년 사이에 국내총생산(GDP)이 22배, 1인당 GDP가 15배로 늘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도 나타났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뀌는 과도기는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초래했다. TV와비디오콤팩트디스크(VCD) 등의 분야에서는 국유기업간 제살깎기경쟁으로 국가경제에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관주도로 무분별하게 처리된 각종 사안들이 경제규모 확대와 시장경제화에 따라 고비용저효율과 금융불안 등 여러 난제를 낳았다. 부정부패, 빈부격차, 대규모 실직, 환경오염, 밀수 등도 큰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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