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 입시제도와 교사의 양식

  • 입력 1999년 9월 5일 19시 42분


현재의 고교 1년생이 치르게 될 2002학년도 대학입시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2002학년도 입시부터 전면 도입될 무시험 전형제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시험 전형은 대학입시에서 시험 점수 이외에 특기 재능 리더십 등 다양한 전형요소로 수험생의 학업성취도와 자질을 평가하는 제도다. 이에 맞춰 교육부는 올해 고교1년생부터 수행평가 봉사활동 등 새 평가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협동심과 수업에 임하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수행평가만 해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술 더 떠 불거진 문제가 일선 학교측에 의해 이뤄지는 ‘성적 부풀리기’다.

‘성적 부풀리기’란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도록 하기 위해 시험을 터무니없이 쉽게 내는 것을 말한다. 서울 지역의 경우 지난 학기 286개 고교 가운데 26개 고교가 성적을 부풀린 것이 문제가 되어 재시험을 치른 것으로 나타났다. 엄격한 기준으로 따진다면 ‘성적 부풀리기’에 가담한 학교들이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험을 고의로 쉽게 내는 이유는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내신 성적 산정이 절대평가로 바뀐데 따른 것이다. 학생의 성적순위 비율이 제한되어 있는 상대평가와는 달리 절대평가는 심할 경우 모든 학생들에게 ‘수’를 주어도 상관없도록 되어 있다. 좋게 본다면 학생들이 높은 내신성적을 갖고 입시를 치르도록 학교측이 ‘배려’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 부풀리기’는 무시험 전형의 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무시험 전형에서는 내신 등 각 고교의 공정한 학생평가가 제도의 성패를 가름하는 열쇠다. 대학이 시험 없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에는 일선 고교의 평가를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무시험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해 온 미국 대학들은 고교 평가가 과장되거나 왜곡됐을 경우 해당 고교 출신자를 아예 뽑지 않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교육의 근본인 믿음을 저버리는 불공정 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새 입시제도는 이제 출발선에 서 있다. 채 시작도 되지 않아 제도의 뿌리가 이처럼 흔들린다면 우리 교육계가 과연 제도를 소화해낼 만한 수준에 와 있는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수업중 시험 문제 암시’ 등 갖가지 편법을 동원한 교사들에게도 교육자로서 양식과 직업의식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권위를 되찾자는 교육계의 외침은 이런 부도덕하고 비교육적인 일이 버젓이 행해지는 한 공허할 따름이다. 교육당국도 조속히 보완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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