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본질 흐리는 '색깔논쟁'

  • 입력 1999년 8월 18일 18시 39분


김대중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언급한 재벌개혁 보안법개정 남북한 문제 등을 놓고 여야간에 색깔 논쟁이 치열하다. 그같은 논쟁은 문제의 본질을 흐려 놓는 소모적 정쟁(政爭)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측은 김대통령이 “우리경제의 최대 문제점인 재벌의 구조개혁없이는 경제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고 강조한데 대해 이는 ‘반 자본주의적’이라며 “그같은 경제개혁은 사회주의적 변혁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재벌개혁이라는 문제를 ‘사회주의적 변혁’ 등의 자극적인 용어로 규정한 한나라당측의 그같은 주장에는 현정부의 정책에 색깔론을 점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대통령이 언급한 보안법개정과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이 대북(對北)정책을 너무나 모호하게 다루고 있다”거나 보안법개정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만 무장 해제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 주변에는 사회주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이처럼 자극적인 용어까지 구사하며 여권을 몰아붙이는 한나라당의 자세는 분명히 옳지 않다.

그러나 그같은 한나라당측 주장에 대해 ‘정경유착으로 만들어진 당’ ‘군사정권의 후예인 당’의 ‘작태’로 몰아붙이는 여권의 자세 역시 치졸하다. 여권이 야당의 주장에 그런 식으로 대응해 간다면 불필요한 말싸움만 가열될 뿐이다.

정치권은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지 본질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은 정부정책을 정쟁의 대상으로만 몰아가서는 안될 것이고, 여권은 야당을 상대로 진지한 토의를 유도하고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는 재벌개혁이 결국은 재벌해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원칙까지 건드린다면 우리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북한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데 우리만 왜 보안법을 개정하지 못해 야단이냐는 등등의 보수주의적인 의견과 목소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여권이 그런 의견과 목소리를 개혁에 반(反)하는 수구세력의 저항정도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재벌개혁이나 보안법개정은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다. 여론이 집약될 때까지 충분히 토의돼야 한다. 색깔논쟁같은 방법으로 본질적 논점을 희석시켜서는 안된다. 지금은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색깔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