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독일 재통일]베를린, 9월 수도이전 앞둬

  • 입력 1999년 8월 4일 19시 41분


붕괴 10년이 지난 현재 베를린 장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을 비롯한 서너군데에 500m 가량씩 산발적으로 ‘보존’돼 있을 뿐이다.

이마저 “그냥 두자”는 측과 “부숴버리자”는 측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벽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신 빨간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 위를 지금 사람들은 무심히 걷고, 차들은 바삐 달린다.

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장벽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십자가들이 서 있다. 마지막 십자가에는 ‘9 NOVEMBER 1989.DIE MAUER FLLT(89년 11월9일. 장벽 쓰러지다)’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장벽 블록은 한때 기념품으로 인기를 모았으나 대부분 가루로 분해됐다.이중 상당량이 베를린 신축 건물의 자재로 사용됐다고 한다. ‘과거’의 유산이 ‘미래’의 건설에 쓰인 셈이다.

‘미래의 건설’은 바로 베를린 시가 현재 맞고 있는 주제어이기도 하다. 9월로 예정된 독일 정부의 베를린 천도를 앞두고 시내 전체가 ‘공사중’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포츠담광장에선 신도시를 개발하듯 포클레인과 트럭 소리가 요란하다. 분단 이전 ‘베를린의 명동’이었다는 이 광장에는 많은 대형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베를린영화제 무대가 시내 극장에서 포츠담광장에 신설되는 극장으로 옮겨 열릴 예정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옛 동독지역도 삭막했던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 문 바로 옆에는 미국 대사관이 입주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러시아 대사관과 이웃하게 된다. 텅 비었던 도로 옆에는 아들론 호텔, 드레스덴은행 등 현대식 신축건물들이 들어섰다.

긴장지대였던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은 이제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가 됐다. 거리낌 없이 키스를 하는 남녀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에서 잿빛 역사를 더듬기란 쉽지 않았다.

〈베를린〓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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