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특집]모세-람세스,세기말 은막서 「화려한 부활」

  • 입력 1998년 12월 23일 19시 41분


왜 지금 시대에 모세인가.

구약성서의 출애급기. 그 까마득한 시대에 신화처럼 등장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3천2백여년의 시간을 넘어 20세기말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세를 다룬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에는 19일 개봉후 사흘만에 전국에서20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이에 앞서, 모세와 대립했던 이집트 왕 람세스2세에게 초점을 맞춘 프랑스 소설 ‘람세스’는 지난해 국내에 번역돼 1백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됐다

세계적으로도 모세와 이집트를 다룬 출판물 발간이 유행을 이루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도 14일자에 모세특집을 마련, 모세 붐을 분석했다.

이같은 ‘모세 열풍’은 1차적으론 작품들의 완성도에서 나온다고 할수 있다. ‘이집트의 왕자’는 특수효과로 빚어낸 화려하고 웅장한 영상과 실사(實寫)를 능가하는 정교함을 자랑한다.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리너 주연의 ‘십계(十誡)’에 비해 종교적 색채는 옅어지고,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는 화려한 음악 속에 모세와 람세스의 인간적 갈등을 부각시켰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도 이집트 역사를 육화(肉化)시킨 듯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율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모세붐의 가장 큰 힘은 모세 이야기 자체에서 나온다.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교수는 “모세 이야기에는 시간의 벽을 넘어서는 인간사회 본질의 문제가 담겨있다”고 분석한다.

억압받는 민중, 가혹한 통치자, 해방에의 꿈, 그 꿈을 이뤄줄 지도자, 급변하는 주인공의 계급적 지위….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을 주제들이 과거의 ‘신화’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살아나는 것이다.

‘이집트…’의 제작자인 제프리 카젠버그도 “한 개인의 과거와 전통, 형제간의 엇갈린 운명과 갈등을 그린 더이상의 극적인 스토리는 없다”고 강조한다.

출판사인 문학동네의 김철식편집팀장은 “2, 3년전부터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문화적 욕구, 특히 고대와 외국문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사람들 마음속에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갈구가 강해지는 세기말의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람세스는… ▼

모세 열풍이 불면서 모세와 람세스에 대한 재해석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히브리인들을 가혹하게 억압한 폭군으로만 묘사됐던 람세스2세(기원전 1279∼1212년)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집트의 왕자’는 모세에 대한 애증으로 괴로워하는 람세스의 내면을 조명한다.

소설 ‘람세스’는 67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룩소르 신전 등 이집트 곳곳에 건축물을 남긴 건축왕이며 1백30명의 자녀를 남긴, 프랑스의 한 학자가 ‘가장 위대한 정복자, 진리의 수호자인 태양왕’이라 극찬했던 람세스를 복원시킨다. 지난해엔 람세스2세의 맏아들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타임지는 특집기사에서 ‘모세’라는 이름이 ‘물에서 건져내냈다’는 의미의 히브리어에서 나온게 아니라 ‘태어나다’는 의미의 이집트어 접미어일 뿐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새로운 학설들을 소개했지만 실존인물 여부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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