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우중씨의 해고자제론

  • 입력 1998년 7월 20일 19시 10분


김우중(金宇中)전경련 회장대행의 정리해고 자제론이 재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회장은 19일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주최 하계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고통을 분담하면서 실업발생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고용조정은 경기가 좋아진 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김회장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지금처럼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실업자가 급격하게 늘면 사회불안을 야기시켜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발언 요지다.

김회장의 발언과 관련, 전경련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일 뿐이라고 못박고 있으나 그가 재계의 실질적인 총수인 차기 전경련회장이라는 점에서 재계는 적잖이 당혹해 하고 있다. 그동안 전경련과 경총은 기업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또 정부의 실업대책과 관련, 고용조정을 경제 체질강화의 기회로 삼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재계의 이같은 입장이 아니더라도 김회장의 돌출 발언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우선 인식론적 오류다. 구조조정은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불가결의 국가적 과제다. 그리고 구조조정에는 정리해고와 같은 아픔이 따르게 마련이다.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는 경제개혁은 불가능하다.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도 그렇다. 이미 우리는 1기 노사정위원회 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에 합의했다. 이런 합의를 무시하고 노동계가 정리해고제 재협상을 요구함으로써 마찰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

그러잖아도 경제개혁이 집단이기주의에 밀려 주춤거리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23일 총파업을 계획하는 등 총력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같은 시점에서 김회장의 해고자제론은 자칫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고 노동계에 총파업의 논리적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재계 빅딜과 관련한 그의 바르샤바 발언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경기가 좋아진 이후로 고용조정을 미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이 잘 안간다. 경기가 활성화하면 그때는 감원이 아니라 고용을 늘려야 할 게 아닌가. 구조조정이 시급한 마당에 고용조정의 연기를 들고 나온 것은 노동총량에 대한 잘못된 인식처럼 비친다. 감원보다 일자리를 나누자는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시장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방해한다. 김회장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명백한 부연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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