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마르세유의 치욕

  • 입력 1998년 6월 21일 20시 26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축구대표팀이 네덜란드팀에 당한 참담한 패배는 한국 축구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세계인의 눈이 집중된 월드컵 무대에서 최악의 망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의 체면과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 남겼다. 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최다 점수차 패배라는 외형적인 기록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완벽하게 뒤진 경기내용이었다.

우리 대표팀은 기술 작전 투지 등 모든 면에서 네덜란드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멕시코팀과 치렀던 1차전의 패배는 불의의 선수퇴장에 따른 수적 열세나 선수기용 미스 등 변명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번 경기는 말 그대로 일패도지였다.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너무 컸다. 세계 축구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른 채 월드컵 16강 진출을 공언했으니 ‘우물안 개구리’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대표팀의 졸전이 온 국민에게 안겨준 허탈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경기 전만 해도 내심 의외의 성과를 기대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새벽 잠을 설쳐가며 TV 앞에 모인 국민은 대표팀이 연이어 다섯 골을 허용하자 안타까운 한숨만 내쉬다가 끝내 말을 잃고 말았다. 막판에는 경기가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런 패배감이 자칫하면 국민의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인정한다 해도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일본대표팀이 첫 본선진출임에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코칭스태프와 체육당국의 무능과 준비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예선을 가까스로 통과한 일본팀은 이번 대회에서 2패를 당하고 있으나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내실있는 경기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와 대조적이다.

패배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회기간이긴 하지만 우선 대표팀 수술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 두 경기에서 선수기용과 작전구사에 문제점을 드러낸 차범근감독에 대한 문책론은 감독이 패배의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지금처럼 대표팀이 우왕좌왕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다음 벨기에전을 위해서도 감독 교체를 고려해봄직하다.

한국 축구는 마르세유의 수모와 치욕을 잊어서는 안된다. 축구 재건을 위한 반성과 교훈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선수양성과 시설투자 등 축구발전을 위한 기본 토양을 가꾸는게 급하다. 4년 뒤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는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단기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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