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20]취업주부 자녀양육

  • 입력 1998년 6월 17일 08시 07분


독일의 통신판매회사 오토페어잔트의 마케팅담당인 마르티나 루데빅(32). 7년전 아들을 낳고 3년간 집에서 쉬며 아기를 돌보다가 복직했다. 출산휴가 14주 동안 월급이 고스란히 나왔고 이후에는 사회보장으로 매달 6백마르크(현재 약 46만원)씩 나왔다.

덴마크에서는 취업주부가 아이를 낳을 때 출산휴가 28주와 육아휴직 24주를 합쳐 거의 1년을 쉴 수 있다. 아기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3주 정도의 출산휴가를 갖는다. 휴가기간중 지방정부 등의 부담으로 월급의 90%가 지급된다.

“덴마크 여성들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요. 회사측도 별반 꺼리는 일이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긴 제도예요.”

덴마크의 취업주부 야느 묄러(24)의 설명이다.

국제노동기구(ILO) 모성(母性)보호협약은 ‘출산휴가를 최저 12주로 하되 국가의 사회보장이나 공적기금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당수의 나라가 이 기준을 웃돈다. 영국에서는 월급이 최고 90%까지 나오는 출산휴가가 40주. 스웨덴에서도 월급 90%가 지급되는 출산휴가 12주, 육아휴직 4백50일이 보장된다. 핀란드에서는 아이가 일곱살이 될 때까지 근무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다.

호황일 때는 노동시장에 유입됐다가 불황일 때는 일자리를 내놓고 ‘뒤로 쭉 빠져줘야 하는’ 신세인 우리나라 여성들과는 너무 다르다. 왜 그럴까.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서비스에 대해 서구 기업들은 비용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수한 여성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로 인식하죠.”(한국여성민우회 정강자·鄭康子 공동대표)

우리나라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그간 꾸준히 상승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전 50%를 넘어섰다. 15세 이상 여성 중 경제활동 능력이 있는 사람이 비경제활동인구(가정주부 학생 등)보다 많다는 뜻. 여성에게 일 할 여건을 잘 마련해주는 일이 국가경제에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산 육아 부담이 큰 25∼34세에 이르면 이 비율이 급격히 하락했다가 그 이후 다소 회복된다. 그래프로 그려보면 M자 모양이 나온다. U자를 거꾸로 놓은 모양의 스웨덴 프랑스 미국 영국 등과 대조를 이룬다.

마케팅부문 9년 경력의 이현아씨(33)는 며칠 전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두달 뒤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본인도 잘 모른다.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꾼다.

“회사를 더 못 다닐 것 같아요. 아기 맡길 데도 없고 요즘엔 보너스도 안 나와 보모 월급 대기도 벅차니까요. ‘엄마도 고생, 애도 고생’, 못 할 짓이죠. 나중에 시간제 일자리나 구해봐야겠어요.”

우리도 그럴싸한 제도를 갖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출산휴가, 남녀고용평등법에 육아휴직, 영유아보육법에 보육시설설치가 규정돼있다. 그러나 실시여부를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성민우회는 작년 5대그룹 대졸여직원 면접조사에서 ‘승진연도에 즈음해 출산을 하는 경우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승진탈락 위험도가 높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육아휴직은 무급인데다 원직복직이 불투명해 쓰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94년의 한 조사에선 사용률이 6%에 그쳤다. 직장보육시설 설치율도 97년말 대상사업장 중 13%뿐.

국가부도 위기가 닥쳐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모성보호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도록 하는 정책안이 예산부족탓에 몇년 동안 논의뿐이었어요. 지금은 IMF체제라서 시행이 더 어려워졌어요.” (노동부 부녀소년지원과 이정님·李貞任 서기관)

“취업여성을 위한 각종 지원책이 막 이루어지려다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요. 일자리라도 보장받기 위해 ‘삶의 질’까지 덥석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이 됩니다. 나중에 이보다 더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여성인력이 바탕이 된 국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최명숙·崔明淑 사무국장)

이런 가운데 여성단체들은 △출산휴가 현행 60일에서 90일로 연장 △육아휴직 유급화 △보육시설 확대 △유산 사산시에도 유급휴가 신설 등을 주장한다. 전제는 국가 기업 근로자의 공동부담.

취업주부 자녀양육문제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집안일과 직장일을 조화롭게 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 2세양육이 더이상 ‘그녀 혼자’만의 책임이 아닌 국가 사회 개인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여성개발원 고용연구실 김태홍(金泰洪)연구위원의 지적.

“여성을 채용하면 돈이 더 들어간다는 기업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동일 노동을 하는 남녀간에 임금격차가 있고 실제로 육아휴직 등을 허용하는 기업이 얼마 되지 않거든요. 임금도 똑같아져 기업이 여성채용을 부담스러워한다면 모성보호비용은 정부가 부담해야 할 겁니다.”

〈윤경은기자〉ke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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