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강원도 산간 오지 사람들]인제군 점봉산 김달환씨

  • 입력 1998년 3월 12일 08시 19분


강원 인제군 점봉산은 전국의 때이른 봄소식에도 아랑곳없이 온통 눈이다. 집도 하얗고 길도 하얗고 들과 산도 온통 두꺼운 눈이불에 덮여있다. 이 눈사막 한가운데 사는 김달환씨(47)를 찾아가는 길은 험하고 멀다. 김씨집은 하늘아래 높은곳 해발 800m에 서있는 아담한 통나무집. 그는 국악연주자이자 국악기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다. 작년봄 가족과 공장을 모두 서울에 두고 훌쩍 이곳에 왔다.

퉁소를 잘 불던 아버지덕에 어릴 때부터 국악기에 눈을 뜬 그가 서라벌예대 기악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돌아온 것은 아버지와 형들의 꾸중과 매질이었다. 그러나 가출과 단식으로 저항하던 그를 더이상 말릴 수 없었다.

졸업하고 시작한 게 국악기공장 ‘민족국악사’(서울노량진소재). 가야금부터 거문고 북 장고 편종 편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국악기를 만들었다. 모양흉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 보자는 고집하나로 이어온 20여년 세월.

그러나 생활은 늘 줄타기의 연속이었다. 좀 자리잡았나 했더니 융단폭격처럼 밀려오기 시작한 중국산 제품들, 만들어놓은 악기를 팔기 위해 필요했던 수없는 접대와 만남들…. 피곤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산에 들어가 살자. 길이 막혀 못가는 고향 황해도 대신 명절때마다 들렀던 처가 진동리.

많은 사람속에서 살았지만 늘 외로웠던 그. 진동리 산골에선 신문배달을 위해 매일 찾아오는 우편배달부가 유일한 말벗이지만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산골생활을 통해 육체노동의 정직함과 무소유를 배운다는 그.

“서울에 살 때는 그렇게 갖고 싶은 게 많았는데 땔감과 식량을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이곳에선 간단한 장비, 몇권의 책, 내가 좋아하는 대금 하나면 충분하다.”

김씨는 집정리가 되는대로 자리가 잡히면 5명 공장식구들까지 이곳으로 불러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제〓허문명기자〉

▼ 김달환씨 산장 가는길

아직도 하얀 눈세상 진동리를 가려면 자동차없이는 힘들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속사로 빠져나가 31번국도를 탄다. 1시간반가량 달리다 ‘현리’가 나오면 ‘방동’쪽으로 우회전한다.

1시간가량 달리면 아스팔트가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역시 1시간가량 달리면 점봉산 자락아래 끝마을인 진동삼거리가 나온다. 일명 설피밭이다. 김달환씨의 산장(0365―461―115)은 점봉산자락아래 맨 끝집.

국도를 이용하려면 서울 양평 홍천 인제로 해서 31번국도로 빠져나가면 된다.

점봉산 줄기인 북암령 단목령 곰배령 세 골짜기가 만나서 이뤄진 분지 진동리는 조선시대에는 동해와 홍천에서 넘어오는 장돌뱅이들이 묵던 주막터였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뒤숭숭한 속세를 떠나 세상을 떠도는 한많은 선비들의 유랑지였고 일제때는 독립군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6·25로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주민들도 흩어져 인가가 드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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