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문화를 즐기는 인내심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해마다 7,8월 독일 남동부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오페라 축제는 전세계 바그너 숭배자들에게는 꿈의 향연이다. 이 축제가 유명한 것은 공연시간만 대개 4시간이 넘어 웬만한 오페라단의 규모로는 손도 댈 수 없는 바그너의 대작들을 이곳에서는 손쉽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작을 보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4시간 반이 넘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보려면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무려 7시간을 오페라에 바쳐야 한다. 1시간 반 짜리 만찬시간과 1시간 짜리 휴식시간이 중간중간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 전통 예술인 가부키를 보기 위해서도 인내심은 필요하다. 도쿄 가부키자(歌舞伎座)에서 열리는 정통공연은 보통 5시간이나 걸려 중간에 1시간 정도 도시락으로 저녁을 들어야한다. 이번 주말부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도 국내 창극 사상 최장 시간의 ‘춘향전’이 공연될 예정이어서 판소리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부로 나눠 6시간이나 걸리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가부키나 바그너의 오페라처럼 극장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 ▼이번 공연은 오정숙 안숙선 등 명창과 임진택의 연출이 어우러져 훌륭한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창극이 바그너의 오페라나 가부키처럼 장시간 공연이면서도 세계 공연예술계에 한국의 정통종합극으로 자리매김 받기 위해서는 휴식공간을 비롯해 공연 외적인 요소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특히 바그너 오페라나 가부키를 보기 위해 5∼7시간을 즐겁게 할애하는 독일과 일본 관객들처럼 국내 사상 초유의 완판장막창극을 보기 위해서는 애호가들의 판소리사랑이 중요하다. 이번 새 창극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의 대표적 공연물이 되었으면 한다.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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