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공연현장]「파우스트」,칼날같은 현실비판

  • 입력 1997년 11월 18일 08시 00분


제아무리 불후의 고전이라 해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끝까지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극 「파우스트」를 졸지 않고 보기도 쉽지 않다. 17일부터 국립극단이 공연하는 「파우스트」는 일단 재미있다. 「거친 연극」을 추구하는 연출자 이윤택 스타일이 등푸른 고등어처럼 살아있다. 배경은 97년말 서울이라고 해도 좋다. 파우스트(장민호 분)는 와이셔츠에 신사복차림이고 「구원의 여성」 그레첸(방주란)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삼수생이다. 술취한 사람들은 『누굴 찍나?』 『외국신문들은 우리경제가 세계에서 제일 위험하다는데…』하며 오늘을 희롱한다. 「거친 연극」을 마뜩찮아 하는 사람들은 이번 「파우스트」를 난삽하고 무절제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두 발을 디딘 「이윤택판 파우스트」에는 현실에 대한 시각과 진단이 칼날같이 서있다.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은 어떤 고상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위해서였다. 푸코의 언급대로 섹슈얼리티가 현대의 진리로 자리잡았음을 포착한 셈이다. 파우스트를 젊게 만드는 마녀의 공간은 사이버 스페이스처럼 꾸며졌고, 대중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위해 빠른 템포와 감각적 장면으로 3시간의 공연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다. 연극인생 50년, 기념무대에 오른 장민호씨의 열연은 단연 돋보인다. 이미 세차례나 파우스트를 연기한 경험이 있어 「파우스트 장」이라 불리는 노배우가 이윤택의 연출에 맞춰 메리야스 내복 바람으로 춤을 추는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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