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무엇이 달라졌나]PC통신

  • 입력 1997년 3월 25일 08시 37분


[홍석민기자]『「비디오텍스」라는 얘기만 꺼내면 여직원들이 키득대곤 했지요.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당시 잘 팔리던 생리대 이름과 비슷했거든요』 PC통신 1세대인 P부장(한진정보통신)은 통신 서비스 초창기인 지난 86년을 떠올리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비디오텍스」는 바로 국내 최초의 화상정보서비스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국내 PC통신의 역사는 지난 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데이콤이 날씨 등 생활정보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최초다. 지금처럼 집에서 초고속 모뎀을 이용해 PC통신을 즐기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가정에서 쓰는 일반 이용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컴퓨터값이 워낙 비싸기도 했지만 모뎀 하나가 50만원이 넘어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이 넘도록 이용자는 기업체 9곳밖에 없었다. 일반 이용자는 우체국 창구에서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난 88년까지만 해도 PC통신은 단순 「주입식」 서비스였다. 게시판에 글도 못올리고 채팅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사용자이름(ID)도 필요없었다. 우리나라의 PC통신은 케텔(하이텔의 전신)의 발전이 출발점이다. 케텔의 초기 전략은 「공짜」작전. 돈도 안들이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용자가 급증했다. 케텔은 92년까지 무료 서비스로 가입자를 늘려나갔다. 처음엔 통신용 모뎀까지 공짜로 나눠줬다. 이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PC통신의 「꽃」인 동호회도 잇따라 등장했다. 케텔은 촛불 반대 시위까지 벌어지는 소동을 겪으며 92년 유료화를 단행했다. 이용요금은 9천9백원. 한번 빠지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인 대화실 서비스(채팅)는 89년이 되어서야 처음 등장했다. PC통신이 이렇게 빨리 널리 퍼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88년 최초 상용서비스인 데이콤 천리안의 총가입자수는 불과 1천명. 나우누리 유니텔이 차례로 등장했고 10년이 채 안되는 올해 이용자는 4개 PC통신회사를 합쳐 모두 2백만으로 꼭 2천배 늘었다. PC통신은 지난 94년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수요가 또 한번 점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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