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누이의 「세상읽기」

  • 입력 1997년 1월 20일 20시 13분


누구나 겪는 어려운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돈이란 참고 버티면 그냥 해결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무렵에 배웠다. 물론 버틸 수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예컨대 이런 일이다. 아이가 고기가 먹고싶다고 한다. 그 날도 내 주머니는 비어 있고 아내가 가지고 있는 천원 짜리 한 장이 집안의 유일한 돈이었다. 천원 어치면 세 살 짜리에게는 충분하겠지. 아내와 같이 정육점에 갔다. 『쇠고기 주세요』한 근도 반 근도 아닌 천원 어치를 사려는 판이니 목소리에 자신이 있을 수 없다. 『얼마나 드려요』 정말 대답하기 싫다. 『천원 어치요』 주인은 고기를 자르려던 손을 멈추고 쳐다본다. 그 눈길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지만 아직도 한 고비가 남아 있다. 『아이에게 먹일 건데 갈아 주세요』 겨우 말을 건넸지만 주인은 마지못해 자른 고기를 기계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우리 것을 한 쪽에 제쳐놓고 그 손님에게 먼저 고기를 건넨다. 기분으로야 당당히 항의를 한 후 박차고 나오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겪은 일을 또 한 번 겪어야 한다. 또 한 사람이 들어오고 그 사람에게까지 고기를 판 후에야 우리 것을 건네준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고맙게 받아야 했다. 살림이 이런 정도였으니 주위에 베푸는 작은 친절도 우리에게는 감격할 사건이 되는 수가 많았다. 바로 손위의 누이는 그 때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심심치 않게 식사에 초대하였고 만날 때마다 아이에게 용돈이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돈을 쥐어 주었다. 어느 날인가 그 날도 식사를 대접받은 후 미안한 마음에 인사치레를 한 마디 하였다. 『이 다음에 내가 더 잘 살게 되면 많이 갚아 줄게』 무심코 던진 말에 누이는 뜻밖에 진지한 반응을 하였다.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야』아니, 이 무슨 자존심을 짓밟는 소리인가. 『네가 나보다 잘 살게 되더라도 나는 너한테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은 아닐 거야』그래, 그렇게 자신이 있단 말이지. 다소 고까운 생각이 들려고 하는 순간 누이의 말이 이어졌다. 『나중에 네가 무언가 보답하려면 그 대상은 내가 아니야. 지금 너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보답하는 거야』 담담한 어조였지만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사회는 훨씬 좋아질거야』 나이도 불과 한 살 차이고 체구도 작은 누이가 갑자기 크게 보였다. 어렵던 시절에 얻은 그 교훈은 그 후 세상을 보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지금도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일이 있으면 나는 그 누이에게 조언을 구한다. 황 인 홍〈한림대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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