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신의 ‘빙상의 전설’] 다시 일어나라! 심석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2월 18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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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m 예선에서 넘어지며 탈락한 심석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500m 예선에서 넘어지며 탈락한 심석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다시 일어나라! 심석희”

억세게도 운이 없었다. 올림픽 개막 전 터진 폭행 사건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최민정과 함께 여자 쇼트트랙의 쌍두마차로 기대를 받던 심석희가 첫날 500m 예선에서 탈락한 데 이어 본인의 주종목인 1500m에서도 예선 탈락했다. 심석희의 컨디션은 이후 벌어질 1000m와 3000m 결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우려가 더 크다.

● ‘기린’ 심석희. 큰 키로 세계를 호령하다

강릉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심석희는 7세 때 오빠가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막내딸이 재능을 보이자 아버지 심교광 씨는 솔가해 서울로 이사했다.

‘기린’. 심석희의 별명이다. 어릴 적부터 독보적으로 키가 컸다. 어린 시절 경기 사진을 보면 다른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머리 하나 더 큰 그가 뛰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역대 쇼트트랙 대표팀 여자 선수 중 최장신(176cm)이다.

쇼트트랙 선수로서 큰 키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키가 크면 긴 다리 길이로 한걸음에 다른 선수보다 더 멀리 갈 수가 있다. 체력도 덜 소비하기 때문에 중장거리에 유리하다. 대신 좁은 공간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야 하는 쇼트트랙의 특성상 순발력과 코너워크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무게 중심이 높아서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석희 본인도 큰 키에 대해 많이 고민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그냥 남자 선수다’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자세를 잘 잡으면 힘 있게 스케이팅을 해나갈 수 있고 막판 발 내밀기에서도 남들보다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어쨌든 심석희는 큰 키를 잘 활용해 2012년 1월 동계유스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3관왕과 종합우승을 했다. 그리고 2012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종합 우승하며 화려하게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서 박승희 선수와 함께 여자팀의 선전을 이끌었다.

지난 소치 올림픽 여자 3000m계주 경기 당시 심석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소치 올림픽 여자 3000m계주 경기 당시 심석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소치올림픽 3000m 계주 ‘분노의 질주’의 추억

그리고 2년 후 대망의 소치 올림픽. 심석희는 최소 2관왕은 가능할 거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개인전에선 은메달 하나와 동메달 하나를 따냈다. 특히 본인의 주 종목인 1500m에서 중국의 저우양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한 장면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던져줬다.

하지만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심석희는 반칙을 거듭하는 중국 여자대표팀에게 멋지게 설욕하며 8년 만에 금메달을 따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다. 마지막 바퀴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를 아웃코스로 시원하게 추월하며 대한민국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긴 것이다.

소치올림픽 내내 이어진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불운과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 안현수 선수의 귀화 파동, 피겨에서 편파 판정으로 금메달을 빼앗기고 2연패에 실패한 김연아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 등으로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던 대한민국 국민의 막힌 속을 뻥 뚫어주었던 그야말로 ‘분노의 질주’였다.

그 후 이어진 2014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심석희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까지 3관왕에 오르며 첫 개인 종합우승도 거머쥐었다. 바야흐로 세계 여자 쇼트트랙에 심석희 시대가 열리는 것만 같았다.

● 슬럼프와 폭행 파문 그리고 평창올림픽

하지만 이후 심석희는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며 한 살 어린 후배 최민정에게 세계 정상의 자리를 내주면서 기대만큼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몇 년간 국내외 대회를 강행군하며 누적된 피로에 국제무대에서 본인의 전략과 특성이 파악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해가 갈수록 조금씩 예전 기량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 그는 최민정 선수와 선의의 경쟁을 펼친 끝에 지난 시즌 월드컵 종합 랭킹 3위, 세계 선수권 3위의 성적을 거두며 세계선수권 종합 3위에까지 주어지는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4 년 전 막내로 출전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어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심석희는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평창올림픽을 한 달 여 앞두고 심석희가 진천 선수촌을 이탈한 것이다. 특히 이탈 이유가 대표팀 코치이자 오랜 스승이었던 조재범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것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 큰 파장이 일었다. 조 코치는 심석희를 발굴하고 지금까지 키운 코치였기에 팬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올림픽을 앞두고 심석희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서 조급함에 폭력을 휘둘렀다는 후문이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조 코치를 영구 제명했다. 이후 심석희는 선수촌에 복귀했지만 아직 그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1500m에서 미끄러진 것은 스케이트 날이 망가진 것이 원인지만 그에 못지않게 컨디션도 좋지 않아 보였다.

여자 쇼트트랙대표 심석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여자 쇼트트랙대표 심석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심석희가 살아나야 대표팀이 살아난다

심석희의 부진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최민정이 좋은 경기력으로 1500m 금메달을 따냈지만, 앞으로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심석희의 부활은 필수적이다. 최민정이 온전히 자기 실력을 드러낼 수 있었던 1500m와 달리 1000m는 남자부의 경우에서도 봤듯이 점점 단거리화 돼가고 있는 추세이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때문에 1500m에서 선전한 김아랑과 함께 심석희도 분전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 계주 결승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중국과 캐나다를 이기기 위해서도 심석희의 경기력이 살아나야 한다. 1번 주자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심석희가 부활하지 않으면 여자 계주 올림픽 2연패는 어려워진다. 남은 올림픽 기간 심석희의 역주와 환한 미소를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빙상칼럼니스트· ‘빙상의 전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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