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인생은, 흔들리며 피는 꽃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4월 8일 05시 45분


KIA 곽정철(왼쪽)은 ‘기회는 계절처럼 다시 온다’는 말을 가슴 속에 새긴 채 포기하지 않고 5년간의 재활을 견뎠다. 그리고는 다시 마운드에 우뚝 섰다.  LG 이동현은 무려 3차례나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고도 100홀드 고지를 밟았다. ‘하루살이처럼 살자’는 좌우명 속에 한 경기, 한 경기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KIA 곽정철(왼쪽)은 ‘기회는 계절처럼 다시 온다’는 말을 가슴 속에 새긴 채 포기하지 않고 5년간의 재활을 견뎠다. 그리고는 다시 마운드에 우뚝 섰다. LG 이동현은 무려 3차례나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고도 100홀드 고지를 밟았다. ‘하루살이처럼 살자’는 좌우명 속에 한 경기, 한 경기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아홉 번의 수술 후 KIA 마무리로 우뚝 선 곽정철
세 번의 팔꿈치수술 딛고 100홀드 완성 LG 이동현
시련속에 포기하지 않은 그들…화창한 봄날을 맞다

#. 까맣게 잊고 있었다. KIA 곽정철(30). 한때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름 석 자는 우리의 기억에서 차츰 차갑게 식어갔다. 그럴 만도 했다. 2011년 시즌 중반 1군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 뒤로 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세상인심을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 야구를 하면서 무려 9차례나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 지난 5년간만 따져도 팔꿈치와 무릎에 5차례나 칼을 댔다. 1년에 한 번꼴. 2009년 ‘SKY(손영민∼곽정철∼유동훈) 라인’의 일원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연결고리가 됐던 불펜의 핵이었지만, 다시 1군 마운드에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의 눈이 아무리 차가워져도, 그는 내면의 뜨거움을 잃지 않았다. 두려움에 흔들릴 때마다 ‘기회는 계절처럼 다시 온다’는 문구를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재활훈련이 노동처럼 느껴질 때마다 ‘내 위치가 여기라면 더 준비하겠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가 옳았다. 겨울 같았던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냈더니, 꽃피는 봄날이 기어코 돌아왔다. 올 3월 시범경기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5년간 박제돼 있던 ‘곽정철’이라는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다시 알렸다. 6경기에 등판해 단 1점도 내주지 않고 3세이브를 거두면서 희망의 불을 지폈고, 무려 5년 만에 1군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는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이했다.

그리고는 마무리투수 자리를 꿰차고 2일 마산 NC전에서 1.1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1792일 만에 정규시즌 세이브를 거뒀다. 5일 광주 LG전에서도 1이닝 무실점으로 팀 승리를 지키면서 시즌 2세이브를 수확했다.

“포기하지 않았더니 저에게도 기회가 계절처럼 돌아왔네요. 오랜 만이었지만 1군에 올라오는 그 길이 생소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 잘 한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지금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할 따름이죠. 이제 비로소 멈췄던 시계를 돌리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 2일 잠실구장. 한화전에서 이틀 연속 연장전 끝내기 승리를 거둔 직후 LG 이동현(34)은 공 하나를 움켜쥐고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그 공을 내밀었다. 108개의 실밥으로 여민 똑같은 야구공.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LG 양상문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굵은 매직펜으로 ‘의지의 LG맨! 100홀드까지 아픔을 잘 이겨냈다’는 글자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새겨 넣었다. 무언의 교감이었지만, 그것이 사나이들의 언어였다.

2001년 프로 데뷔 후 선수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2004년, 2005년, 2007년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3차례나 받았다. 이젠 인대가 고장 나면 더 이상 수술을 못한다. 오른쪽 팔꿈치에 구멍을 뚫을 자리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승도 아니고, 100세이브도 아닌 역대 8번째 100홀드지만, 그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공이 그에겐 청춘이고, 꿈이고, 인생이었다.

남들이 걷는 지름길이 부럽지 않았을까. 홀로 걷는 둘레길이 외롭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와 여기까지 왔다는 데 대해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견뎌준 제가 고맙습니다. 3번째 수술을 할 땐, 나이도 어렸지만, 다시는 공을 던지지 못할까봐 정말 두려웠어요. 당시 이상훈 선배님과 김병곤 트레이닝코치님이 ‘비록 구속이 110km, 120km밖에 나오지 않더라도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격려해줘 그 말만 믿고 수술을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100홀드까지 왔습니다. 이제 다 비우고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출발할 겁니다. ‘하루살이처럼 살자’는 제 좌우명처럼, 앞으로도 다시 한 경기, 한 경기 전력투구를 해야죠.”

누구에게나 시련은 오기 마련. 세월의 풍화 작용 속에 차돌처럼 단단해진 곽정철과 이동현은 우리에게 말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인생은 흔들리면서 피는 꽃이라고.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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