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동원, 1984년 KS 나홀로 4승…야구공 잡고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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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5일 07시 00분


고교시절 17연속 이닝 노히트노런 ‘괴물투수’
대학교땐 23연승 행진…ML입단 제의도 받아
프로 8년간 103승·80완투 역대 최고 무쇠팔

1984년은 ‘불멸의 에이스’ 최동원의 절정기였다. 최동원이 1984년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후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1984년은 ‘불멸의 에이스’ 최동원의 절정기였다. 최동원이 1984년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후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되돌아 본 최동원의 야구인생

임종 직전 고인의 손에는 어머니 김정자 씨가 건네준 야구공이 살포시 쥐어졌다. 한국야구 불세출의 스타가 또 졌다.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14일 지병으로 입원 중이던 경기도 일산병원에서 5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 청아공원으로 결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 씨와 군복무 중인 아들 기호 씨가 있다.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7일 지병으로 타계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또 하나의 큰 별이 떨어져 야구계는 비통에 잠겼다. 아마추어와 프로 모두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최 전 감독의 별세가 한국야구의 큰 손실임은 14일 빈소를 찾은 조문행렬에서도 확인됐다.

○병상에서도 식을 줄 몰랐던 야구 열정

고인은 한화 2군 감독으로 재직하던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 병세가 호전돼 2008년까지 한화 2군 감독으로 일했고, 2009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병세가 악화돼 2010년부터 현장을 떠났다가, 대한야구협회가 올해 7월 22일 목동구장에서 마련한 경남고-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 때 수척해진 몸으로 모교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채 덕아웃을 지킨 고인은 “다음에는 꼭 던지겠다”며 투병의지를 다져 주위를 숙연케 했다. 고인은 병세가 나빠진 지난해부터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왔다.

○초고교급 ‘괴물투수’의 원조

경남고∼연세대를 졸업한 고인은 광주일고∼고려대를 나온 선동열 전 삼성 감독과 함께 한국야구 100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로 평가 받는다. 그 명성은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부터 출발한다.

9월 17일 1회전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9이닝 노히트노런(경남고 4-0 승)을 달성한 데 이어 이튿날 4강전에서도 선린상고를 맞아 7회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벌였다. 1976년 6월 18일 청룡기대회 승자결승 군산상고전에선 탈삼진 20개를 수놓으며 3안타 1실점 완투승을 기록했고, 이틀 뒤 최종결승에서도 다시 군산상고를 맞아 2안타 12탈삼진 무실점의 5-0 완봉승을 거두는 철완을 과시했다. 승자결승의 20탈삼진은 전국대회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

23연승을 달린 연세대 시절을 지나 1981년 실업 롯데에 입단하자마자 17승으로 최우수선수·최우수신인·최다승투수의 3관왕을 차지했다. 1981년 9월 계약금 61만 달러에 메이저리그 토론토와 입단계약을 해 파문을 낳기도 했지만 결국 아마 신분을 되찾아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고, 1983년 2월 계약금 7000만원, 연봉 3000만원에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했다.

○역대 최고의 무쇠팔

고인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간 프로 통산 103승74패26세이브, 방어율 2.46을 남겼다. 1984년 27승13패, 방어율 2.40, 223탈삼진으로 최우수선수(MVP)·다승왕·탈삼진왕, 1987년 탈삼진왕(163개)을 꿰찼지만 선수회 결성을 주도한 탓에 1988년 11월 삼성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뒤로는 급격히 내리막길(1989년 1승2패·1990년 6승5패)을 걸었다.

짧고 굵었던 프로 경력의 하이라이트는 1984년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다.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의 져주기 의혹 속에 후기리그 패권을 차지한 롯데는 전력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1차전 4-0 완봉승, 3차전 3-2 완투승, 6차전 5이닝 무실점 구원승, 7차전 6-4 완투승(5차전 선발패)을 거둔 최동원을 앞세워 한국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극적인 우승을 거머쥐었다. 은퇴 후 고인은 지방의회 출마, TV 시트콤 배우 등으로 외도를 했다가 2001시즌 한화 투수코치로 야구계에 복귀했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트위터 @jace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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