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감동의 드라마를 쓴 프레젠테이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7일 00시 21분


코멘트
며칠 밤을 새워 영어 대본을 모두 외웠다. 그 속에 감정을 불어넣었다. 조금 어눌한 발음이 나오기도, 잠시 문장이 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왜 우리가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그리고 왜 세 번째 도전을 해야만 했는지를 또박또박 말했다. 진심은 통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95명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양호 평창 유치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김진선 유치 특임대사, 문대성 IOC 위원, '피겨 여왕' 김연아, 한국계 미국 스키선수 토비 도슨,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 평창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 대표단 프레젠터 8인은 감동의 전령사였다.

이들은 6일 오후 7시 10분(한국 시간) 남아공 더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23차 IOC 총회 프레젠테이션에서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 꿈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했다. 평창 유치위의 슬로건처럼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을 선보였다. 역동적인 4개의 영상물과 미래, 변화를 제시하는 연설이 이어졌다. 앞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와는 차원이 달랐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조양호 위원장은 유머 섞은 이야기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는 "뮌헨과 안시는 훌륭한 경쟁자이자 친구였다.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면서도 "다만 너무 (표를) 많이 주지는 말라"고 웃었다.

강원도지사 시절 겨울올림픽 유치에 두 번 실패한 김진선 대사는 감정에 호소했다. 연설 말미에 IOC 위원을 향해 "여러분 앞에 세 번째로 서있는 건 내 운명"이라고 말하던 중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주위는 숙연해졌다.

프레젠테이션의 꽃은 김연아와 토비 도슨이었다. 김연아는 깔끔한 영어 실력과 상큼한 미소로 IOC 위원을 사로잡았다. 그는 "10년 전 평창이 겨울올림픽 유치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아이스링크에서 나만의 올림픽 드림을 꿈꾸는 작은 소녀였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드림프로그램을 만들어 겨울스포츠 시설 지원을 하면서 한국은 지난해 밴쿠버 겨울올림픽 7위에 올랐다"며 인적 유산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자 도슨은 자신의 한국 이름을 '김봉석'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입양아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자신의 경력과 그런 자신에게 스포츠가 준 꿈과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이다. 평창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리면 기회조차 없었던 수만 명의 어린이들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뮌헨과 안시는 평창의 감동 드라마에 묻혔다. 뮌헨은 피겨 스타 카타리나 비트가 몸에 착 달라붙는 붉은 색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해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은 독일어로만 연설한 데다 평이한 내용이었다는 평가다. 경쟁에서 뒤처진 안시는 프레젠테이션조차 주목받지 못했다.

더반=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