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스타를 만드는 힘] “내 이름은 ‘OOO 아버지’…아들 따라 도는 삶이지만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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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3일 07시 00분


야구선수 아버지가 살아가는 법
생업 팽개치고 아들 위해 전국 방방곡곡 누벼
힘들었냐고?…허허, 아버지 할 도리 했을뿐
“아들이 절실하게 원해서 야구 시켜” 한목소리
부상땐 아찔 … 베이징 금 땄을때 가장 큰 보람

야구스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승엽(오릭스)의 아버지 이춘광 씨, 류현진(한화)의 아버지 류재천 씨, 
김현수(두산)의 아버지 김진경 씨, 김광현(SK)의 아버지 김인갑 씨(왼쪽부터 시계방향)는 “야구선수 아버지는 아들 따라 도는 인생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 아버지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아들 때문에 뒷바라지도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스포츠동아 DB.
야구스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승엽(오릭스)의 아버지 이춘광 씨, 류현진(한화)의 아버지 류재천 씨, 김현수(두산)의 아버지 김진경 씨, 김광현(SK)의 아버지 김인갑 씨(왼쪽부터 시계방향)는 “야구선수 아버지는 아들 따라 도는 인생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 아버지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아들 때문에 뒷바라지도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스포츠동아 DB.
이끌어주고, 포용하고, 희생하는 자리. 그리고 노심초사하는 포지션.

보통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야구선수를 둔 아버지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아들의 이름을 위해 살아가는 아버지들. 아들이 잘 나가면 덩달아 즐겁고, 아들이 부진하면 남몰래 뒤돌아서서 한숨을 쉰다.

류현진(24·한화)의 아버지 류재천(55) 씨, 김현수(23·두산)의 아버지 김진경(62) 씨, 김광현(23·SK)의 아버지 김인갑(53) 씨,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68) 씨…. 우리 시대 최고의 야구스타를 둔 아버지들에게 ‘야구선수 아버지로 살아가는 법’을 들어봤다.

○자식 이기는 아버지 없다


이들 4명의 아버지는 모두 “아들의 뜻에 따라 야구를 시켰다”고 말했다.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법. 아들이 절실히 원했기에 야구에 입문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이춘광 씨는 “승엽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너무나 강경하게 야구를 하겠다고 했다. 1982년 프로야구가 탄생한 뒤에 야구선수들이 각광을 받았지만 사실 야구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싶어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절대로 아버지 어머니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는 말을 해 야구 안 시키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류현진 김현수 김광현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이들은 이춘광 씨처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어 하자 처음부터 전적으로 밀어줬다고 한다. 역시 부모의 뜻이 아니라 아들의 뜻에 아버지가 맞춘 것이었다.

이승엽 류현진 김현수 김광현 모두 힘든 운동을 하면서도 어릴 때부터 “야구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류재천 씨는 “부모들이 앞서나가면 안 된다. 자식에게 욕심을 부리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아버지들도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걸 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다음에 부모는 아들이 갈 길을 이끌어주고 밀어주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들 따라 삼만리, 아들 따라 웃고 울고


지금은 야구 하나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스타가 된 아들이지만, 그들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아버지들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희생을 해야만 했다.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니라 아들 따라 도는 삶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야구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생업을 팽개치고 전국 방방곡곡을 따라다녔고, 어머니들도 야구부 식사를 마련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은 “공부하는 아들 뒷바라지 하는 건 어렵지 않느냐.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로서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아버지의 마음은 미어진다. 이춘광 씨는 “승엽이가 요미우리에서 부진해 2군에 갔을 때는 힘들지 않았다. 성적이 안 나오니 내가 감독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2007년 손가락 수술을 한 뒤에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 게 더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김인갑 씨는 “광현이가 2009년 김현수 타구에 공을 던지는 왼손을 맞고 쓰러졌을 때 깜짝 놀랐다. 이대로 선수생명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고 돌이켰다.

류재천 씨는 “현진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팔꿈치 인대 수술을 했는데, 처음에 병원에서 계속 ‘괜찮다’고 오진이 나왔던 게 분했다”고 한숨을 쉬었고, 김진경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해 잠시 힘들기도 했지만 주위에서 전화위복이 될 거라는 위로를 해주었다. 그런데 정말 전화위복이 됐다”며 웃었다.

○베이징올림픽의 감격


아버지들에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느냐”는 질문을 하자 모두들 “아들이 야구를 잘 해왔기 때문에 항상 기특했고 보람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순간만큼은 모두에게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춘광 씨는 “승엽이가 올림픽 초반에 부진해 나도 안타까웠는데, 준결승과 결승에서 정말 통쾌한 홈런을 날려 내 아들 야구시키기 잘했구나 생각했다”며 아직도 감격에 겨운 듯 목소리가 잠겼다.

오히려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울 당시에는 “나도 부담이 컸고, 정신이 없어서 즐기지를 못했다”고 털어놨다. 류재천 씨, 김진경 씨, 김인갑 씨 모두 “그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아들이 선배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야구를 시킨 보람을 평생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최근 야구붐이 일면서 야구팬이 급증하는 것에도 이들은 모두 “보람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인갑 씨는 “문학구장에 관중이 매년 늘면서 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아들 이름을 불러줄 때 가슴이 뭉클하다”며 웃었다.

○후회?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 아버지로 살아갈 것

아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 함께 웃고, 부진할 때는 함께 가슴 아파하는 아버지들. 그들의 희로애락은 오롯이 아들과 직결돼 있다. 자신의 삶이 아닌, 아들을 따라 살아가는 삶.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 아버지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경 씨는 “난 요즘 김현수 아버지라고 불린다”면서 “아들 덕에 내 이름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즐겁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춘광 씨는 “야구를 한 뒤에 성공하지 못한 아들을 둔 부모들에겐 미안하고 송구스럽다”면서도 “젊었을 때 ‘평생 내 이름이 신문에 한 번 나는 날이 올까’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언론사 기자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느냐. 야구선수 아버지는 아들 따라 사는 인생이지만 이만하면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 아버지로 살아갈 만하다”며 껄껄 웃었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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